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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Jul 07. 2019

거꾸로 뛴 서울 둘레길 4코스...

이래도 저래도 가면 되는데...  주저함이 많네...ㅜㅜ

나는 러너(runner)이다.

누가 러너라고 이야기해주지는 않았으나 내가 달리미로 정리하였다.

여기에 수식어를 하나 더 붙인다면 한강을 사랑하는 러너이다.

한강을 뛰는 것을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밤과 새벽까지 한강을 뛰곤 하였다.

하지만 여름에 한강을 뛰는 것은 너무 힘들다.

너무 덮고 너무 쨍쨍하여 어제 아침에는 뛰러 갔다가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산에 가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오늘 나의 산행은 서울 둘레길 4코스...

보통은 수서역에서 대모산을 오르고, 구룡산을 지나 양재 시민 숲을 통과하여 우면산으로 오는데

나는 반대로 갔다.

거꾸로 가니 둘레길 입구를 찾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겨우 길을 찾아서 나의 뛰고 걷는 것은 시작되었고 끝까지 갔으나 헤매고 또 헤매었다.

이러한 행동들은 방황 혹은 고난을 이겨내는 쾌감은 전혀 없었다.

단지 거꾸로 가니 내가 감수해야지 하는 정도의 작은 탄식과 허무함만 있었다.

그래도 자연은 공평하게 반대로 가는 나에게도 바람과 그늘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약 19킬로미터에 가까운 길을 가면서 한 번도 앉아서 쉬지 않았다.

계속 뛰든 걷든 하였다.

하지만 중간에 몇 번은 섰고 몇 번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였다.

오늘 내가 간 4번 코스에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대한항공 희생자 위령탑, 상풍 참사 위령탑,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 그리고 6.25 전쟁 때 희생된 분들의 비석들이 있는데 그곳들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떤 분들에게는 감사를 어떤 분들에게는 위로를 드리고 싶어서 선글라스를 벗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였다.

사실 거꾸로 가면 길만 헤매는 것은 아니다.

종이에 스탬프를 찍는 즐거움을 가질 수도 없다.

하지만 앱으로 인정받았고 이것저것 경험도 하였으니 오늘은 아날로그적 감성 하나쯤은 포기해도 될 것 같다.

편하고 즐거움만 있는 산행은 아니었지만 가장 오늘다운 하루인 것 같다.

그것만으로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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