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옆지기 님께서 10년 정도 남은 나의 정년 이벤트를 미리 발표하셨다.
퇴임과 동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잖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년 뒤 그 기간은 부부싸움의 연속일 것이다.
왜냐하면 운동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도 마라톤을 하고 즐기지만 마늘님은...
오늘 새벽, 마늘님이 주무실 때 홀로 집에서 빠져나와 석수역으로 갔다.
서울 둘레길 6번 코스를 뛰기 위해서 이다.
출발은 시원하고 좋았다.
그냥 평범한 달리는 시간이니 18킬로미터라는 거리는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 급하게 바뀌는 것 같다.
시원한 날씨는 불볕더위가 되고 일상적 달리기는 극기훈련으로 바뀌었다.
급수도 준비하지 못한 나는 10킬로미터를 뛰고 걷기 모드로 전환했다.
시기는 아침인데 요상하게 미칠 만큼 더웠다.
티셔츠가 젖은 것은 참을만했는데 반바지가 젖어서 허벅지를 휘어 감고 그 끝단에서 떨어지는 나의 분비물이 허벅지를 타고 내리는 느낌은 정말 싫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뛸 때보다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무지 많으나 다 생각해낼 수도 없고 표현도 불가능하기에 몇 가지만 써본다.
내가 만약 날 수 있다면 지금 달리기를 포기하듯이 나는 것을 포기하면 어떤 느낌일까?
아니면 내가 처음부터 뛸 수 없는 걷는 사람이면 걷기를 포기하면 어떤 느낌일까?
아니면 내가 걷기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도 어느 목표를 위해 전진해야 하면 나는 어떤 느낌과 생각일까?
사실 이런 질문의 답은 없다.
하지만 나의 짧은 여러 개의 질문은 내가 서울 둘레길 6번 코스를 완주하게 하였고 지금의 내 모습에 조금 더 감사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매우 성공적인 하루 시작이다.
꼭 정리해야 하면 이렇게 하고 싶다.
스페인 혹은 유럽 어느 지역을 지나가는 그 길보다 매우 싼 이 길 서울 둘레길은 미칠 만큼 좋다.
이는 내 고향을 염창동을 지나가는 길이었고 이제는 볼 수 없는 나의 아버지가 느껴졌고 선글라스 속에 작은 이슬 하나 흘러 보냈기 때문만 아니다.
오늘 새벽을 온전하게 나에게 선물한 나의 옆지기 덕분이다.
철저하게 혼자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도 어느 길 한복판이라면 그곳이 순례길이고 산티아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