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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Nov 24. 2019

서울둘레길 8번 코스에서 방황하기(11월 20일)

오늘은 가을의 방점인가? 아님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변곡점인가?

난 어제 1년간 근무한 일터를 떠났고 다음 주 화요일이면 새 사무실로 출근한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이 많은데 생각을 고쳐먹는 것이 가장 시급한 시점이다.
그래서 산과 하늘을 보며 사색을 하고자 걷고 뛰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선택한 길은  북한산길(서울둘레길 8코스)로 157킬로미터의 서울둘레길 중 가장 긴 거리인 34.5킬로미터이고 안내서 상에는 19시간이 소요된다고 쓰여있다.
구파발역에서 시작하여 도봉산역에서 끝난다.

구파발역에서 뛰기 시작한 시간은 07시 30분경인데 날은 좀 쌀쌀했고 밤에서 낮으로 완벽하게 변하지 않아 조금 어둑했다.
그래서 세상은 냉장고처럼 신선한 상태에서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난 이렇게 긴 걷고 뛰기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 스탬프를 통과하고 몇 개의 간판을 지나서니 또 스탬프가 나왔다.
근데 자세히 보니 내가 서있는 곳은 앞에서 첫 번째 스탬프라고 지칭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서울둘레길, 북한산둘레길, 은평둘레길 등 여러 개의 간판이 잘 보이게 설치되어 있었고 중간에 방향을 지시하는 조그마한 이정표가 있었는데 내가 작은 이정표를 놓진 것이었다.
이로써  시간으로는 약 30분, 거리로는 약 2킬로미터를 더 걷고 뛰어야 했지만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늘어나서 나쁘지 않았.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무 과한 표현보다는 진심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도 앞으로 살 인생도 그럴 것이다.
사실 끝까지 갔을 때 내가 이동한 거리는 37.2킬로미터였다.
주의 깊지 못한 관찰과 명확하지 못한 판단 그리고 여러 개 표지판의 혼재가 계속 경로를 이탈하게 하였다.

길을 찾고 또 한두 번 더 틀리다 보니 하늘이 높고 파래졌다.
온전한 낮이 되었고 까데던 까치도 조용해졌다.

오늘의 하늘은 가을의 방점인 것 같다.
옛말에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고 했는데 이는 가을 하늘이 너무 이뻐서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쁘게 정리된 데크로 만들어진 길을 지나니 평창동이라는 동네에 도착하였다.
담도 높고 집도 크고 길도 엄청 가파르다.

내가 아는 산기슭에 있는 곳은 달동네인데 여기는 별동네이다.
어떻게 보면 서울의 산마리노 같고 이쁘다.
그런데 내가 아는 풍수 상식으로는 사람들이 사는 집터로는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심한 비탈길은 재물이 센다고 한다.
진짜 재물이 없어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동에 제한이 될 소지가 있다.
그리고 북한산과 한강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로 좋아 보이지만 산이 너무 높아 기세 강하다.
임금님이 계셨던 경복궁은 안산, 북악산, 낙산을 등지고 있는데 그 산세와 비교해도 북한산은 너무 크다.

결과적으로 사원이 있으면 좋을법한 자리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절이 있었다.

멋지고 부러운 집들을 구경하고 걷다 보니 순례길 구간에 이르었다.
이곳에는 이준 열사 등 우리나라를 지켜주신 많은 분들을 모시고 있고 419 묘역도 있다.

약속이 있어서 이준 열사 기념비에만 묵념하고 왔으나 다음에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더 할애하고 풀이라도 뽑고 올 것을 기약하고 발을 옮겼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산 끝자락을 넘어 도봉산으로 가는 길 뿐이다.
파란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많았으나 제대로 물든 단풍과 떨어진 낙엽은 가을가을 한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도봉산역 근처에 왔을 때는 해는 저물어가고 어둠이 천천히 찾아오는 시점이었다.

어둠은 한기를 몰고 다니는지? 추위도 조금씩 느껴졌다.
오늘의 낮은 가을의 방점이 오늘의 밤은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세월의 변곡점이다.

그리고 이번 산행은 너무 길어서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으나 오늘이라는 정의를 가르쳐주었다.

오늘은 살아온 결과의 최첨단이고 살아갈 세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머리도 짧게 깎은 만큼 지나간 오늘에 머무르지 말고 다가올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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