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공룡능선 생활!
그냥 걸어, 기어, 걸어, 기어, 걸어!
우리 집 좌장이신 마늘님은 슬의생을 좋아한다.
슬의생의 멋진 선생님들이 두려워한 그 공룡능선을 지난주에 내가 다녀왔다.
설악산을 접한 사람들은 공룡능선을 꿈꾼다.
이는 런린이가 마라톤 풀코스를 꿈꾸는 것과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한계령~대청봉~오색, 소공원~금강굴~마등령~백담사를 접하면서 언젠가는 꼭 공룡능선을 가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설악은 꽤나 먼 곳에 있고 험난한 곳을 같이 갈 동반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나의 마라톤 동호회에서 공룡능선을 가겠다고 결심했고 리더 핀님을 주축으로 공룡원정대가 구성되었으며 마늘님께서 무박 2일의 여정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9월 25일 밤 11시 우리는 사당역에 모였고 설악산으로 출발하는 관광버스에 탑승했고 9월 26일 03시 30분경 소공원에서 하차하였다.
그 당시 우리는 쥐라기 공원 입구의 흥분보다는 잠에 취한 상태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여러 대의 버스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리둥절한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짐도 챙겼다.
그렇게 불과 십여분이 지났는데 차도 사람도 다 없어졌고 우리 일행만이 남았다.
소공원부터 비선대까지는 평지였다.
우리는 머리에 랜턴을 두르고 쫑알거리며 적막한 밤을 몰려다녔고 이는 얼마 전에 본 영화 미니언즈를 생각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여유로움은 오직 3km 뿐이었다.
기어오르는 고개라서 마등령이라고 불려지는 그곳에 가기 전까지...
우리는 기어야만 했다.
이야기보다는 숨소리가 더 커졌다.
가끔 보이는 달이 즐거움이고 밝아져 가는 하늘이 희망이었다.
이 산행은 큰 행복을 줄 것이라는 희망도 사실 없었다.
구름이 많아 일출 보는 것을 포기했고 지긋지긋한 이 오르막길이 없어졌으면 생각했다.
극한 낙담은 항상 반전을 이뤄주지는 않지만 그날 그곳에서는 완전한 반전이 생겼다.
그 순간이 오기 전 찰나까지도 우리 모두 그러한 신비를 예측도 예상도 못했다.
사진으로는 신비를 담을 수 없다.
신비함은 입으로는 설명할 수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나는 산과 하늘 그리고 바다를 좋아하지만 그 세 가지가 이렇게 멋지게 어우러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산은 밤의 아쉬움을 고스란히 담아서 어둠이 어우러졌고 하늘은 새로운 기백을 푸르름으로 적셨으며 바다는 어둠과 낮을 금빛으로 동시에 담아냈다.
이는 과거, 미래, 현재를 한 번에 보는 것 같았다.
무엇이 더 소중하고 멋지다고는 못할 만큼 잘 어우러지고 신비했다.
멋진 일출을 본 우리는 또 멋진 산야를 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삶은 항상 예측을 벗어나는데 그 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등령을 오르고 공룡능선을 타는데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르는 이 하얀 물 입자가 동행했다.
우리는 신선대만 맑았으면 했고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세상이 바라는 대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지만 희망이 있으면 기쁨이 더 커진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저 멋진 봉우리들을 이어서 공룡능선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내가 그리고 우리가 걸었던 길이라서 더 멋지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천불동은 정말 행복한 곳이었다.
이름은 천 개의 불상과 유사하다는 데서 왔는데 병풍과 같은 절벽이 누군가에게는 불상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곳은 수억 년을 흐르는 물줄기와 수억 년을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청량하여 낮은 구름처럼 설악을 흘러온 나그네들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이래저래 22킬로를 걸었고 또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썼다.
물론 지난날도 좋았고 앞으로도 행복하겠지만 내가 공룡에 간 그날은 유독 좋았다.
공룡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