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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Oct 24. 2021

이상을 꿈꾸는 달리기

2상이 1상으로, 1탈이 2탈로. 인생 같은 달리기.

삶을 여러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경제적으로 말씀하고

어떤 분은 철학적으로 논한다.

나는 가끔 말장난으로 정리한다.

2상을 꿈꾸는 1상과 2탈을 경계하는 1탈로...

이제 오늘의 주제에 대하여 내 삶과 연계해서 이야기하겠다.

누군가 나에게 왜 뛰냐고 질문하면 난 "그냥!"이라고 답변을 한다.

왜냐면 나도 내가 왜 뛰는지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뛰기 시작한 시점과 그 이유뿐이다.

철원 학저수지 주로(走路)

나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2015년 11월, 우리 아버지는 폐렴에 걸리셨고 상태가 위중하여 중환자실에 계셨다.

그 당시 나는 쏟아지는 업무에 정신이 없었기에 주말에만 찾아뵐 수 있었는데 나에게 주어지는 면회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내가 사랑하는 그분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채울 수 없는 공허감을 그 어떤 것으로 대신해야 하는데 그때 시작한 것이 달리기다.

숨을 잘 못 쉬는 아버지와 함께하기 위하여

달려서 내 호흡을 거칠게 하였다.

처음 나의 한계는 3km 정도였고

아버지의 입원시간이 길어지면서 5km, 10km, 20km, 30km로 늘었다.

해가 바뀌고 7번째 되는 날,

금성이 방황하는 새벽시간에 

아버지는 별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나셨다.

그 후 나는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 뛰었다.

이것이 나의 달리기의 시작이다.

아마도 2상을 좇아 달렸던 것 같다.

동행하고 싶어서 뛰었고 그리워서 달렸다.

잠수교에서의 일출 : 해를 보면서 뛰는 것이 좋다.

이제 반백년 가까이 살아보니

가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2상이 1상으로 바뀌는 것은 쉽다는 것이다.

나의 달리기도 그러하다.

그리워서 뛰어도 나는 그와 같이 동행할 수 없었다.

그냥 뛴다는 명목만 남았다.

이것만으로 달리기를 이어가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나는 마라톤 모임에 가입했고

매주 대회에 참가하고 대회가 끝나면 뒤풀이를 하였다.

그때는 나의 달리기에는 그리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뛰는 1상이고 그냥 노는 문화였다.

잘 살기 위하여 공부하는 것처럼

잘 놀기 위하여 달리기를 하였다.

그럭저럭 즐거운 달리기였다.

타이트한 내 삶에서 달리기는 일종의 1탈이었다.

보고서가 잘 안 써지면 다 던져버리고 뛰었다.

중요한 결정 해야 하면 뛰면서 생각하였다.

집에 늘어져 있기 싫으면 밖으로 뛰어나갔다.

쉽게 말하면 달리기는 1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

잠이 안 오면 밤새도록 뛴 적도 있다.

눈이 오면 눈 속에 뛰고 싶어서 나가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며 뛰고 싶어서 나갔다.

영하 27도의 혹한에서도 뛰었고

영상 38도의 더위에서도 뛰었다.

사실 뛰는 것 하나만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를 만들어갔던 것 같다.

달리기는 특별한 나의 1탈이었던 것이다.

철원에서 영하 23도에 뛰고나서 한컷! 나는 백미를 갖았다.

하지만 1탈이 잦아지면 1탈이 될 수 없다.

1탈이 많아지면 두 가지 중 하나이다.

1탈로 인하여 2탈이 되든지

아니면 1탈이 그냥 그런 1상이 되든지...

나에게 먼저 찾아온 것은 2탈이었다.

매일 뛰고 무리하게 뛰니 발목이 부상당했다.

그래도 뛰니 더 많이 아프게 되고

반년 넘게 병원을 다녔다.

그 기간 달리기에서 2탈되었다.

뛰다가 발목이 아파서... 중도 포기!

하지만 지금도 2상을 꿈꾸며 1상처럼 뛰고 있다.

물론 2탈하지 않으며 1탈을 하고 있다.

1상, 2상, 1탈, 2탈 모두 할 수 있는 것!

내가 찾은 유일한 것은 달리기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날리고 내일도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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