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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May 30. 2023

화대종주) 2023년 부처님 오신 날 자발적 고행

모르고는 했다. 알고는...

2023년 5월 27일(음 4. 8, 석가탄신일) 지리산의 엄사부터 원사까지 약 46km에 달하는 거리를 뛰거나 걷는 자발적 고행을 하였다.

날 좋은 2023년 4월 중순 우리 러닝크루의 핀형님이 지리산 화대종주를 가자고 제안을 했고 이를 위하여 5월 26일 야심한 밤에 12명이 모였다.

지리산으로 출발하는 버스 기다리기(사당역)

산을 걷거나 뛰는 사람들은 완등을 원하는 데 여기에는 기준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둘레길만 걸어도 다녀온 것이고

다른 사람은 정상을 밟아야 올라갔던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특정구역 이상을 가야 완주한 것이다.

우리 버스는 지리산에 가는 사람들이 타는 버스인데 위의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 모두 같이 탔다.

유독 반바지에 가장 헐벗은 복장을 한 우리를 보고 한 탑승자께서 "화대 하시나 봐요? 대단합니다."라고  인사를 하셨다.

사실 이때 나는 속으로 "저 화대 하는 사람입니다."라며 자신감 뿜뿜이었다.

왜냐하면 화대종주는 우리나라 3대 종주로 어렵기 유명한 길이고 나에게는 도전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버스는 휴게소에서 한번 멈추고 전라남도 구례에 있는 화엄사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나의 뒷모습

하루 만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은 옷을 많이 입지 않고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

긴 거리를 빠르게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짐이 되는 불필요한 것들은 없어야 한다.

이는 마실 물, 먹을 식량, 입은 옷도 예외가 아니다.

겉모습 자체가 향락과 안식을 위해 산을 찾은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더 많이 갖고 있으면 그만큼 힘들어지기 때문인데 미니멀한 라이프 중 최고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엄사 일주문에서 단체사진

지리산을 한자로 풀이하면 서로 다름을 아는 산이고 화엄사는 불경 중 가장 지혜로운 화엄경을 보유한 사찰이다.

나는 이번 산행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지혜로운 고행이 되기를 희망하였고 두려움과  기대감을 갖고 화엄사 일주문에서 종주를 시작하였다.

성삼재를 오르는 난이

일행은 12명이었고 우리를 안내해 주시기 위해서 마라톤 114의 지리산런닝맨님께서 함께해 주셨다.

길안내뿐만 아니라 언덕을 오르는 법, 산길을 뛰는 법, 코스 특징 및 공략법 등을 알려주셨다.

지세를 모르고 산행에 익숙하지 못 한 우리에게 너무나 큰 도움을 주셨다.

아마 이 도움이 없었다면 12명 모두가 화대종주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임걸령에서 지리실러닝맨님(주황색 바람막이)과 한컷

성삼재까지의 코스는 허벅지가 터지고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오르막이었고 이후는 완만한 언덕 또는 내리막 길이었다.

이 구간은 잔발로 뛰었는데 일상같이 순조롭게 지나가는 듯하였다.

안개비가 내리는 것 이외에는 힘들지도 어렵지도 아니한 곳이었는데 우리 팀 리더 준콩지동님이 발목을 겹질렸다.

그리고 내가 평상시 존경하는 풀그림형님이 컨디션 난조로 뒤쳐지고 있었다.

준콩지동님께는 하산을 권고하고 풀그림형님께는 전화드려서 위치를 확인하였다.

비는 계속 내리고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휴식장소에서 바람막이를 입어도 오한이 온 것 같이 추웠고 두려움에 하산도 고민하였다.

풀그림형님께 전화하는 모습

세상을 사는데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환경 중 가장 큰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오한이라는 난관은 준콩지동님의 발목부상 풀그림형님의 컨디션 난조보다는 크지 않았는데 그들의 도전을 이어가는 모습에 영향을 받았고 나도 포기가 아닌 관리를 선택하였다.

나는 오한을 없애기 위해서 휴식을 최소화할 것을 결심하고 본대에서 이탈하여 앞서나갔다.

삼도봉에서 찍은 사진

삼도봉은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등 3개의 도가 접하는 지점이다.

여기까지는 전라남도를 걸었던 것이고 앞으로는 경상남도를 걷는 것이었다.

계속되는 걸음 속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등의 인사를 많이 해주셨다.

도심의 길에서 혹은 서울의 등산로에서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나도 거기에 물들었고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보통 산은 인간의 교류에는 장애물처럼 생각되는데 이곳 지리산만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등 서로 다른 삶의 터전에 생겨난 차이를 이 인사로 조금은 줄이고 약간은 알게 되는 곳 그래서 지리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비는 더 내렸고 내 체온도 조금 더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의를 꺼내서 착용하였다.

열량보충을 위하여 사탕과 에너지바를 먹었다.

몸에서 열도 나고 입도 달달하니 좋았다.

단지 풍경이 운무에 가려 구경을 못 하는 것이 아쉬웠으나 이름 모를 꽃들이  보완해 주었다.

꽃이 너무 이쁜데 이름을 모릅니다.

화대종주는 그 거리가 46km이다.

나는 거리와 속도가 측정되는 가민이라는 시계를 차고 있었기에 계속 남은 거리를 계산했다.

23km쯤 왔을 때 혼자서 "이제 반 왔다. 반은 더 재미나게..."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속도를 조금씩 높이는데 발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비는 그쳐 가지만 이미 모든 것들을 적신 상태였다.

나는 7년 전 모 브랜드 한국 철수 시 구매한 트레일 러닝화를 신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오늘 귀가하면 넌 버린다."였다.

근데 7년을 함께한 것에 대하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만 잘 버텨줘라! 이쁘게 은퇴시켜 줄게!"라고 생각을 바꿨다.

나의 안전은 매우 중요하기에 나는 험한 오르막길은 기어오르고 내리막길은 주저앉아서 이동하였다.

천왕봉인근 3km 지점부터는 바람이 살벌하게 불었다.

걸어도 춥고 움직여도 추웠다.

더 입을 옷도 비닐도 없는 상태이기에 그냥 걷거나 뛰었다.

어차피 지나야 할 고난이면 빠르게 지나치고 싶었다.

천왕봉의 바람은 손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꾸 내 뺨을 때리는 것 같았고 우의를 찢어버렸다.

정상에 오른 기쁨보다는 헐벗겨짐과 무서운 추위가 느껴졌다.

급히 목적지인 대원사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하산길에 찍은 지리산

바람이 거세서인지 하늘이 맑아졌다.

하지만 숲이 거센 바람에서 날 보호해 주었다.

이제 목적지도 십여 km밖에 남지 않았다.

지리산 품속에 안겨 평화로운 시간을 잠시 보내고 하산을 이어갔다.

치밭목 대피소(종주 마지막 대피소)

하산길은 길인지 야생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모든 돌은 물에 젖어 미끄러웠으며 작은 돌들은 구르기도 하였다.

7년 된 나의 트레일러닝화  하나로 버티기 제한되는 많은 구간은 사족보행을 실시하였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혼자 화대종주하는 분을 만났고 같이 가자고 해서 힘이 났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먼저 가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사족보행하는 인간은 직립보행하는 사람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스팔트도로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나는 다시 직립보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무 기뻐서 도로 위를 뛰었고 잘 버텨준 신발로 마지막 질주를 하였다.

대원사에 도착하고 주차장까지 2.2km가 남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소 실망했지만 계곡의 풍경과 시원한 물소리가 있어서 그리고 완주라는 생각에 즐기면서 걸어갈 수 있었다.

대원사주변 계곡

그렇게 나의 화대종주는 끝이 났다.

먼저 도착한 철인신생아님과 캔맥주를 마시고 얼마 있으니 남은 열 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시간 내에 무사히? 종주에 성공한 것이었다.

사실 지리산 화대종주는 종주(縱走)가 아니다.

남북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것이다.

근데 남북이 종이고 동서가 횡이라는 개념도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지리산이라는 이름처럼 그대로 다름을 이해하라는 오묘한 진리가 여기에 있을 수도...


나는 다시는 이러한 어려운 산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힘들거나 조금 덜 힘든 산행을 할 것이다.

매일 살아가는 것도 매일 훈련하는 것도 오늘과 다른 내가 되기 위함이 아닌가?

부처님 오신 날 자발적 고행에서 다른 세상과 다른 나를 지리산에서 만났다.

대원사 주차장의 귀경버스

마지막으로 같이 산행해 주신 열한 분의 러너님들과 안내해 주신 지리산런닝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계획하고 이끌어주신 핀형님과 부상에도 완주한 준콩지동님께는 조금 더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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