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이 Dec 24. 2016

2016년을 보내며....

이별과 마라톤(아빠가 생각나면 달릴거야)

2015년 이 정도 시기 난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첫째는 아버지가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2016년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아버지는 입원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호흡을 점점 더 힘들어하셨고 처음에는 산소를 다음에는 인공호흡기를 그리고 더 지나서는 기도삽관을 또 지나서는 가래 제거를 위하여 목에서 기도로 관통하는 관을 뚫으셨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폐렴으로 호흡이 상당히 힘든 상태였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말에 면회 가는 것!

그것도 하루에 오전 오후 각 30분 면회하는 것만 허용되었다.

혼자 편하게 숨 쉬는 것이 죄송하여 면회 후에는 호흡이 거칠어질 때까지 뛰었다.


아버지가 입원한 것은 2015년 11월이니 내가 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이다.

2015년 12월 31일 내가 42세 되기 하루 전 2016년에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였다.

갑자기 나이가 42세가 되니 42.195km를 뛰고 싶어 졌다.

아버지 면회 후 계속 뛰면서 거리를 늘렸기에 혼자서 30km까지는 거뜬히 완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1월 3일 하프를, 2월 21일 풀코스를, 3월 20일 동아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하였다.


1월 3일 하프는 정말 재미나게 뛰었다. 힘들거나 한계를 느끼는 것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된다.

처음 대회에 그것도 혼자서 나갔지만 결코 두렵지 않았다. 단지 흥분되고 신기했다.


1월 7일 새벽에 아버지는 세상에서 떠나셨다. 달리기를 시작한 한 가지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뛰면서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목표가 남아 있었고

그 결과물을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었다.


2월 21일 내 첫 풀코스! 나름 자신 있었다. 컨디션도 좋고 매형이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로 같이 뛰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씨가 매우 웠고 23km 지점에서 허벅지와 장딴지에 경련이 올라왔다. 속도를 줄이고 가니 몸이 식었고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매형이 28km 지점에서 심한 경련을 겪게  되고 나는 혼자 뛰게 되었다. 30km를 넘으니 몸은 점점 아파왔고 급기야 뛰는 것을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다. 한강의 바람이 칼같이 볼을 에워갔고 땀에 젖은 옷은 체온을 급격하게 식혔다. 체력의 한계는 32km 지점인 것 같았다. 완주를 못할 것 같패배감보다는 아버지에게 드릴 메달이 없어진다는 것이 더욱 씁쓸하였고 죄책감이 들었다. 못난 아들의 한계를 무릎을 꿇고 빌고 싶었다. 어느새 눈에서 사죄의 눈물이 흐른다. 아기처럼 울고만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못 해 드렸는데 뭐라도 노력하고 싶었다.

완주가 아니더라도 아버지가 항상 강조한 삶에 대한 자세와 성실성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망가진 기계 같은 내 발을 다시 구르고 뛰기 시작했다. 속으로 숫자를 헤아리면서 뛰는데 어디까지 세었는 잃어버릴 때쯤 신기하게 아픔이 사라졌고  나의 눈물에서 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졌다.  신체의 한계는 정신으로 이기는 과정에서 이승의 한계도 무너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몇백 미터는 전력 진주하여 골인지점에 들어왔다.

뿌듯했다. 완주라는 것! 그리고 처음이라는 것!

좋았다. 아버지를 느낀 것! 그리고 메달을 드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순간 양다리의 허벅지와 종아리에 심한 경련이 와서 너무 아팠고 앉을 수도 서있을 수도

누울 수도 없는 이상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심지어 순간 소변도 마려웠는데 화장실까지 보통 종종걸음보다 아주 많이 짧게 걸어서 화장실에 갔지만 소변은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내 생에 가장 더럽고 찝찝한 경험 중 하나이다.

하여간 나는 멋지게 첫 풀코스를 완주하였다.


3월 20일 내 첫 번째 메이저 대회인 동아마라톤 풀코스! 광화문 광장에서 마라톤 클럽분들을 만나고 나는 혼자서 출발을 했다. 2만 8천 명의 건각들과 같이 뛰는 흥분은 정말 최고였다. 도로변에서 시민들께서 파이팅을 외쳐주시기도 하고 사탕도 나눠주셨다. 응원을 받으니 선수가 되었다는 느낌도 들고 서울 한복판을 뛰니 흥이 났다. 나도 파이팅을 외치며 비교적 빠른 속도로 뛰었다. 그 결과 30km까지는 잘 가다가 후반에 퍼졌다. 완주는 하였으나 매우 찝찝한 완주였다.


동아 마라톤 이후 춘천마라톤을 생각하며 연습을 하였으나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열심히 뛴다.

2016년은 아버지가 떠난 해이다.

2016년은 마라톤을 시작한 해이다.

2016년은 언제나 그러하듯 나에게 정말 특별한 해이다.

2016년은 좋은 일도, 화나는 일도, 슬픈 일도, 즐거운 일도 있는 해이다.


하니는 엄마가 그리울 때 뛰지만

난이는 아빠가 생각날 때 뛴다.

2016년은 아빠로 추모하고 달리기로 기억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낮과 밤이 공존하는 시간 달리기(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