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로마
여행 다니며 유명한 분수라고 찾아가면 ‘아,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트레비 분수는 내게 임팩트가 강한 장소로 남아있다. 눈앞에 트레비가 나타난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햇살이 쏟아지는 것 같았던 기억.
20년 전 내 손에는 세 개의 동전이 있었다. ‘하나 던져서 다시 로마로 돌아올까? 아니면 세 개 던져서 지금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랄까?’ 고민하는 내게 친구들은 ‘넌 이미 사랑을 이뤘잖아’ 라고 말했다. 동전 두 개를 자신있게 주머니에 넣고 ‘다시 로마로!’ 하고 외치던 나의 젊은 날이 스친다. 그때 그 사랑을 너무 믿었던 걸까? 그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없지만 나는 지금 다시 로마에 있다. 내 인생의 남자와 함께, 그것도 남자 셋과 함께 말이다. 나는 넘치게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동전 줘 봐.”
“없는데?”
“어? 아까 둘째 화장실 간다고 돈 뽑아 왔잖아.”
“동전은 없지.”
아이들이 소리친다.
“엄마, 우리 동전 못 던져?
병뚜껑 던져도 되나??”
왜 당연히 동전이 있을 거라 착각했을까.
방법이 없었다. 분수 앞에 조용히 앉아있는 중년의 부부에게 다가가 동전 바꾸기를 시도했다.
아저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동전이 없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트레비 분수에서 누가 동전을 바꿔 주겠어…’ 망했다고 생각한 순간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잠깐 기다려 보라고 한다. 그러고는 가방을 다 뒤집어가며 동전을 찾아주셨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곳에서 말이다.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선 우리 가족이 동전을 던지는 사진까지 찍어주신다고 한다. 우리 넷은 동전 없이 간 트레비에서 동전을 던졌고, 멋진 가족사진까지 남겼다. 천사 같은 이탈리아인을 만나서 로마가 더없이 좋아졌다.
아주머니가 너무 고마워서 나도 부부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중년의 부부는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한다. 나는 좋은 포토그래퍼인데 정말 안 찍을 거냐고 다시 한번 권했다. 그러자 서로를 바라보며 ‘이 사람이랑?’ 하는 표정을 짓더니 한사코 거절한다.
길거리에서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곤 하는 이탈리아 커플도
적당한 거리를 두는 중년의 멋이 있네!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올려다본 로마의 하늘은 신들린 듯 맑았다.
다음 행선지는 트라스테베레였다. 여행지에서 버스킹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이다. 테베레 강 위에서 버스킹을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린 여행객보단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그곳으로 향했다. 현지 분위기를 듬뿍 느끼며 골목 가운데 북적이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종업원이 와서 한참 메뉴 설명을 늘어놓는다.
“스파게띠아 마르게리따 피쩨리아 꽌또 스따짜라~#@$!%^"
“........?”
“두 유 언더스탠?”
유럽인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자신의 모국어를 외국인이 알 가능성이 크다는 자존감. 외국인을 만났을 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혹시 길 좀 물어도 될까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아. 너 한국말 몰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엄..... 놉!!
종업원이 깔깔대며 웃는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 하고는 메뉴판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직원의 추천까지 받아 1인 1 피자를 시켜놓고 넷이서 신이 났다. 배불리 먹은 우리는 내친김에 콜로세움까지 걷기로 결정했다. 사실 여행할 때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각 이상으로 힘들어진다. 아이들은 무조건 많이 걸려야 한다는 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경험에 따르면 그것도 상황을 봐 가며 해야 한다. 아이는 가는 길은 호기롭게 걷지만, 실컷 놀고 돌아오는 길이 문제가 된다. 아직 어린 둘째의 체력이 방전되면 여행은 즐거움이 아닌 고통이 되는 게 현실이니까.
그러나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그 시간을 즐겼다. 맛있는 피자를 배불리 먹고 건너는 다리 위에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정말 말로 할 수없이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조국의 제단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니 완벽한 뷰가 펼쳐진다. 꼭 전망대에 돈 내고 오르지 않아도 내겐 충분했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오면서부터 어째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아아~ 이제 콜로세움까지 봤으니까 숙소로!!"
콜로세움을 멀찍이서 지그시 바라보던 아들이 기지개를 켜며 산뜻하게 외치는 게 아닌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번 로마에서 내가 가장 기대한 게 콜로세움 야경이었기 때문이다. 야경을 못 볼까 봐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게 본 거냐? 제대로 봐야지~"
콜로세움을 1킬로미터 앞에 두고
이제 가자니!
안 될 말이다. 아이들의 투덜거림을 귓등으로 날리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는 길 옆으로 수없이 많은 유적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터키에 살고 있기에 사실 이런 고대 유적이 이제 익숙하다. 눈만 돌리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기둥들과 삶의 편린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은 한 가지다. 그것은 세월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그리고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쓸쓸함.
풍경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내가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열심히 유적을 보며 카메라에 담고 있던 할아버지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면 희한한 동질감이 생긴다.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다. 조금 거창하게 포장하면 '인류애' 비슷한 감정 같다.
콜로세움 앞에서 젤라또와 맥주 수혈을 했다. 남편이 계산을 하러 간 사이 아이들과 먼저 나와 기다렸다.
막내가 말했다.
"엄마, 콜로세움 볼 만큼 봤지?"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본 첫째아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말한다.
"엄마, 뭘 하던 곳인지 설명도 들을 만큼 들었고, 역사적인 의미도 우리 충분히 알았어! 이제 가도 되겠다~~"
콜로세움을 300미터 앞에 두고 이제 가자니!
"얘들아, 인간적으로 우리 야경까진 아니더라도 좀 가까이서 제대로 보고 가자."
“엄마는 와 봤다며~ 그때 야경 못 봤어?”
“응. 그때는 어릴 때고 여자 다섯이서 다녔는데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워서 야경을 거의 못 봤어. 한여름이라서 해도 늦게 떨어질 때였단 말야.”
아이들은 밤에 보든 낮에 보든 백 미터 앞에서 보든 코 앞에서 보든 다를 게 없다고 한다.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래? 엄마는 너무 다를 것 같다!!"
너희에겐 선택권이 없으니 코 앞까지 가서 보고 갈 거라고 엄포를 놨다. 그런데 카페에서 계산하고 나온 남편이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 돌아갈까?
나는 버럭 화를 냈다. 남편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표정이다.
“아니, 왜 갑자기 화를 내?
내가 뭘 잘못했나??"
주차해놓은 트라스테베레로 걸어가는 길에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남편은 다리 아프다고 징징대는 막내를 업어주었고 나는 일행이 아닌 것마냥 뚝 떨어져 걸었다. 남편이 급하게 물 한 병을 원샷한 후 페트병에 막내의 오줌을 받을 때도 멀찍이서 외면했다.
차에 타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코너 돌면 왼쪽을 잘 봐.
순간 나는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눈앞에 콜로세움 야경이 펼쳐졌다. 이번에 꼭 보고 싶었던 밤의 콜로세움이 거기 있었다.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남편은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이제 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