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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라 맞아?

우리의 바티칸

by 장미화


대책 없이 즐겁기로는 가족 중에 1등인 막내가 욕을 퍼부어댄다. (욕: 8세 기준 나쁜 말)


“다리는 아파도 너무 멋지지 않니?”

“아니, 멋지지 않아.”


“한 번만 고개 들어서 봐 봐. 저 천장화에 무슨 그림들이 있나 같이 찾아보는 거야!"

“하나도 관심 없어.”


“그래, 네가 지금은 이래도 나중에 어른 돼서 친구랑 같이 와봐라. 그때 내가 왜 그랬나~ 할걸?”

“내 인생에서 여기는 절대로! 다시는 안 올 거임!!”


막내에게 한계가 찾아왔다. 아이와 함께 바티칸을 찾을 시, 힘들게 아침 첫 타임에 가는 것보다 오후에 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글을 봤다. 하지만 오후 늦게 바티칸 입장 줄에 선 아이의 체력이 고갈되고 있었다. 우리의 ‘계획’ 안에 있던 유일한 곳이 이 바티칸인데! 안돼… 조금만 참아보자.


지옥불에 떨어지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은 '최후의 심판'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는 아빠 가이드의 외침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종종 이야기하곤 했던 동화를 끄집어냈다.


"와, 정말 무섭다. 결국 저렇게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걸까? 왜, 숲에서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척하라는 이야기도 있잖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막내가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한다.


“그냥 곰을 안 만나는 게 최선임.”


슬슬 지루해진 첫째도 그 ‘시니컬’ 대열에 합류한다.


“그냥 곰 나올 만한 곳에 안 가는 게 최선.”


“아니, 당연히 그게 최선인 건 아는데~~

혹시라도 만났을 경우를 가정해서 얘기하는 거잖아….”


아빠 가이드는 참을 인을 골백번 되새기고 있었다. 최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이야기들로 이끌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를 읽고 또 읽었던 막내를 위해 등장인물 찾기에 돌입했다.


막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였다. 아이들이 바티칸 안에서 유일하게 즐거워했던 순간은 딱 두 번이었는데, 첫 번째는 메두사의 머리를 잡고 있는 페르세우스가 되어 아빠의 머리채를 잡을 때였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지나가던 사람들은 키득대며 웃었고, 남편은 가장의 권위가 지나가는 개만도 못하다며 씁쓸해했다.


두 번째는 바티칸을 나가는 원형 계단을 신나게 뛰어내려 가며 "탈출!" 이라고 외칠 때였다.


종종거리며 뛰어가는 아이의 발걸음을 보며, 저게 부러질 것처럼 아프다던 다리가 맞나 잠시 의구심이 들었던 것 같다.


막내는 바티칸을 나와서도 욕을 퍼부어댔다.

“여기는 다시는 안 올 거야. 별로 멋있지도 않았어!”


그러고는 덧붙인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라 맞아?
뭐 이렇게 커??




정확히 한달 뒤, 우리집 막내는 냉장고에 붙여놓은 마그넷을 물끄러미 보며 말한다. 바티칸에서 산 '천지창조'다.


엄마, 우리 이거 직접 봤잖아!
진짜 굉장했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바티칸에서 막내의 태도가 생각났다. 악담을 퍼붓던 그 조고만 입을 떠올렸다.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든, 공터에서 축구공을 차든, 바티칸에서 위대한 걸작을 보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으랴. 진짜 굉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을 남겼다. 그것도 우리 넷이 함께할 수 있었다는 그 지점이 기뻤다.


아이가 자신의 기억을 속이며 신나게 떠들게 놔뒀다.

나도 당연히 그게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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