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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치기 보단 착한 이탈리아인의 법

우리의 위기1

by 장미화 Mar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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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도 우리에겐 역시나 위기가 찾아왔다. 상황이 너무 부드럽게 흘러가면 왠지 불안하고 아쉬운 기분마저 든달까. 그러나 착한 이탈리아인들 덕분에 크고 작은 위기들을 무사히 넘겼다. 위기에 처한 타인을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닌 착한 이탈리아인, 그들은 참 친절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경험한 작은 친절은, 오래도록 곱씹어도 기분 좋은 추억이 된다.




처음 이탈리아 지하철을 탔을 때 난 거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소매치기에 대한 일화를 최근에 너무 많이 들었다. 열차에 타자마자 자리를 잡아 앉고선 주변을 쓱 둘러봤다. 우리 앞 좌석에 아저씨가 앉아있었는데 귀에 이어폰을 꽂고 활짝 웃으며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남편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한다.


“왜 저렇게 혼자 웃고 있담? 의심스러워~~”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아주머니가 한 분 탔는데 내가 의심했던 아저씨가 그 아주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나는 또 남편 옆구리를 쿡 찌른다.


“저거 봐. 이상하네. 할머니도 아니고 몸이 불편한 사람도 아닌데 왜 자리를 양보해 줘?”


“글쎄, 착한 거 아니야?”


다음 정류장에서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탑승했다. 그중 진짜 의심스러운 남자가 등장했다.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무표정한 남자인데 손의 위치가 이상하다. 탑승하자마자 가운데 복도를 주욱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손이 어정쩡하게 펴진 상태로 계속 아래를 향하고 있다. 남편이 속삭인다.


“여보, 저 사람이야말로 이상하다!”


그 이상한 남자는 다음 정류장에서 훌렁 내렸다. 그러자 내가 처음에 의심한 아저씨가 갑자기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몹시 당황해한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와 그 옆 사람에게 뭐라고 외친다. 지갑이 없어졌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한다.


“봐봐, 아까 내린 남자! 소매치기 맞네!!”


“근데 저 아저씨 말야, 한 패 일수도 있어.”


“응? 무슨 소리야?”


“소매치기는 원래 팀을 짜서 터는 경우가 많잖아. 자기가 당했다고 저 아줌마 정신을 분산시켜서 훔쳐가는 거 아니야?”


“아니 여보 도대체, 사람이 왜 이렇게 나빴어? 소매치기를 당했다잖아. 그런데도 안 믿어?”


“모르는 거야. 난 왠지 의심스러워.”


“여보, 이탈리아에 아무리 소매치기가 많다지만 모든 이탈리안이 다 날도둑놈은 아니야.”


“흠, 글쎄다~ 이탈리아에선 각별히 조심해야 해. 여보는 너무 순진해.”




바티칸으로 가는 전철에 탑승할 때였다. 열차 문이 열리고 아이들은 아빠와 들어갔는데, 나는 그쪽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얼른 옆 칸으로 탔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밖을 보는데, 아니 이게 웬 천지개벽할 일인가! 두 아이가 문 밖 놀란 토끼 눈을 한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얘들아!!!!!!”


“엄ㅁ ㅏ..!!!!!!”


열차 문이 닫혔다. 그 짧은 순간에 겁 많은 첫째는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담한 막내는 형아가 있어서 괜찮을 것이다.

나는 옆칸으로 뛰며 남편에게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야? 애들이 왜 내린 거야?”


“엄마가 못 탄 줄 알고 놀라서 내린 것 같아!”


아이들이 엄마가 뒤따라 타지 않자 열차에서 내려 버린 것이다. 아, 평소에 어리바리한 내 모습을 사무치게 반성하게 된다. 이럴 때 ‘엄마가 알아서 탔겠지’ 하고 아빠를 따라가면 되는데, 엄마가 혼자 남겨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다니. 어린아이들이 못난 엄마를 챙기는 것이다.


“다 내 탓이다, 내 탓이야…”


지나고 생각하니 별 것 아닌 사건이었지만, 당시에는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이 놀라서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면 어떡하지, 말도 안 통하는데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생각하니 안절부절못하게 됐었다. 나와 남편은 다음 정류장에서 후다닥 내렸다. 나는 내린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다음 열차에 남편과 아이들이 타고 오는지 확인 후 탑승하기로 했다. 내 핸드폰은 로밍이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엇갈리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렸다. 다음 열차가 도착하며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기까지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아이들은 다행히 크게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다.


 남편이 말하길 헐레벌떡 뛰어가보니, 어느 젊은 커플이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주었다고 한다. 놀라서 우는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달래주며 함께 있어준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들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그날 잠들기 전,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동시에 외친다.


우리가 이산가족 될 뻔한 일!


그래, 우리에게 또 하나의 재밌는 추억이 생겼구나.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라도 이런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오늘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된다, 엄마 아빠가 너희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곳으로 데리러 온다고. 나쁜 사람한테 잡혀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당황하지 않는 거라고 말이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막내가 말한다.


“엄마, 그런데 그때 우리랑 같이 있어준 그 아줌마랑 아저씨 진짜 착하다. 그치?”


나는 불현듯 전철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멀쩡한 아저씨를 의심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이라지만 내가 제일 무섭다는 것을.

좋은 타인은 놀랍도록 많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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