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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진에 목숨 거는 곳

우리의 피사

by 장미화


전 세계 사람들이 오직 사진을 찍으러 오는 포토 스팟이 있다. 그곳은 우리 아이들이 이탈리아 여행지 중 가장 기대한 곳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정말 기울어져 있는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 그곳은 바로 피사의 사탑이다.


사실 피사로 향할 때 내 맘속엔 작은 아쉬움이 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일정상 피렌체와 피사 중 한 군데를 결정해야 했다. 아이들의 의견은 물으나 마나 피사였다. 더군다나 피렌체를 가고 싶은 한 사람인 나는 이미 전에 한번 다녀왔으니 갈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피렌체가 얼마나 아름다우며 두오모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어떤지 보여주었으나 일절 감흥이 없다. 오히려 두오모에 올라가는 길이 세비야 대성당에 올랐던 것과 같은 끝없는 계단이라면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한다. 반면 피사의 사탑은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다. ‘참 너희는, 단순하구나.’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왔다.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면 기울어진거지 그 사진 찍으러 거기까지 가야 돼?’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얼쩡거렸다.


하지만 직접 보니 아니었다. 피렌체를 원했던 내게도 피사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정면에 탑이 보이는 순간부터 탄성이 나온다.


우와! 진짜다! 기울어져 있어!!


그리고는 설정 사진 지옥이 시작된다. 설정 사진을 즐기지 않는 나지만 여기서만큼은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 힘든 표정으로 탑을 지탱하는 컷, 으랏차차 탑을 손바닥으로 힘껏 미는 컷, 가뿐하게 손가락으로 미는 컷, 입술을 쭉 내밀고 탑에 키스하는 컷, 아래서 입을 벌려 탑을 먹는 컷, 아이스크림 콘을 탑 아래 대고 찍는 컷 등등. 심지어 피사의 사탑 앞의 젤라토 가게들에선 빈 아이스크림 콘을 1유로에 판매한다.


건장한 청년 셋이서 사진 찍는 것을 구경하다 큰 소리로 웃을 뻔했다. 한 청년이 손바닥으로 탑을 미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그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구도가 말도 안 되게 엉망이다. 포즈를 취하던 청년이 와서 결과물을 보고는 주먹으로 친구의 팔뚝을 마구 때리며 다시 찍으라고 한다. 옆에 있는 친구는 바닥으로 쓰러져가며 웃는다. 아주 재밌어 죽겠나 보다. 사춘기 소녀들처럼 사진 하나로 꺅꺅대는 모습이 귀엽다. 머리카락이 하얀 노부부도 살며시 웃으며 설정샷에 동참한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보다가 따라서해 보는데 슬쩍 가서 결과물을 보니 구도가 완전히 틀렸다. 내가 찍어주고 싶지만 한 번 시작하면 완벽한 컷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릴 분위기라 관뒀다.


적당히 인증샷을 즐긴 우리는 피사의 사탑 앞으로 가까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우린 저 탑에 올라갈 거야!


성당이든 전망대든, 어딘가에 올라갈 땐 내가 한 번 폭발하는 과정을 거친다. 어차피 올라가 봐야 풍경 보는 것 밖에 없는데 왜 고생을 해야 하냐, 엄마는 너무 멋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게 그거다, 혼자 갔다 와라 우리는 밑에 있겠다, 징징대는 아이들이 실망스러워 울화통이 치민다. 그런데 이 아들들이 자진해서 올라가겠다고 한다. 아들 기준 멀쩡한 탑은 올라갈 이유가 없을 거다. 그런데 이게 기울어져 있으니 올라갔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지 싶다. 남편이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쇠구슬을 떨어뜨렸다는 최초의 중력 실험 이야기를 해 준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어쨌든 잘 된 일이다. 아무리 보석 같은 경험이라 해도 부모에게 떠밀려하는 일은 의미가 반감된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훨씬 기억에 남을 테니 말이다.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는 것은 피렌체의 두오모에 오르는 것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아무런 예약도 기다림도 없이 즉흥적으로 피사의 사탑에 오르게 된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티켓을 내고 탑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몸이 기울어진다. 생각보다 기운 정도가 심하다. 올라가면서도 멀미가 날 정도다. 신기한 경험이다.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본 토스카나의 풍경은… 아름다워서인지 기울어서인지 모르게 살짝, 현기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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