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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으로 떠나도 괜찮아

프롤로그

by 장미화


15년 전이던가, 친구와 제주도 둘레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한 외국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곳은 유명한 곳이나 기막힌 절경이 아니었다. 심지어 제주에 널린 이름 모를 눈부신 바다나 푸르른 오름도 아니었다. 그저 낡고 작은 시골집 앞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서요?


그 외국인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바로 여기요.
This is perfect!

그때는 제주에서 외국인을 보는 일조차 신기하던 때였다. 그의 행복한 미소를 보며 ‘왜 여기서 사진을 찍지?’ 하는 의아함은 사라졌다.


“그래, 한국에 여행 왔다고 모두가 인사동이랑 경복궁 앞에서만 사진 찍을 이유는 없지!”


나의 말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이미 인사동이랑 경복궁은 갔다 오지 않았을까?”


아, 그런가?

그래도 그만의 완벽한 장소를 찾았다는 사실이 뭔가 멋져 보였다. '디스 이즈 퍼펙트'라... 영어를 잘 못 하는 내귀에도 그 문장은 콕 박혔다. 언젠가 써먹어보고 싶어질 만큼.


이탈리아 로드트립을 일주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도시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루트로 다닐지, 예약은 했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묻는 족족 나의 대답은 글쎄, 몰라, 아직, 같은 것들이었다. 친구는 아주 빠릿빠릿하고 당장 가이드로 나서도 될 만큼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런 그가 볼 때는 내가 답답하고 심지어 안쓰럽기까지 했을 것이다.


물론 너처럼 계획하는 것이 맞아.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친구는 멈칫했다. 순간 놀란 것 같았다.


“아, 내가 미안해. 내가 맞는 것이 아냐. 결코 네가 틀렸다는 게 아니야. 나는..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기왕 가는 거 많이 보고 왔으면 하는 생각에 얘기한 거야."


참 좋아하는 친구이기에 나는 미안했다.

우등생인 친구가 ‘너도 미래를 위해 공부해 보는 게 어때? 내가 가르쳐줄게.’라고 제안했을 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라고 거절하는 문제아의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인생에서 무계획이 자랑은 아닐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물론 계획하고 공부하고 떠나는 여행이 최고일 거다. 그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모두가 계획적이고, 모두가 학구적인 것은 아니듯이 여행 또한 그렇다. 빈틈없이 보고 많은 지식을 쌓진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면 말이다, 무계획은 또 그것 나름대로 굉장히 좋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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