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베네치아
사실 ‘럭키 비키’가 무슨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도 잘 모른다. 그냥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이었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나와 남편은 신나게 ‘럭키 비키’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검색해보니 '럭키 비키'는 그냥 '럭키'와는 다른 의미)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여행할 즈음 이탈리아에 비 소식이 많다고 들었으나 웬걸, 로마에서의 날씨는 럭키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깨방정을 떨며 다녔던 걸까? 로마를 떠나면서부터 비가 들이붓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에 도착해 본섬으로 들어가는 수상버스 안, 잔뜩 찌푸린 날씨 때문에 여기가 베네치아인지 인천 앞바다인지 알 수 없었다. 울적한 마음으로 본섬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몇 걸음 걷다 보니 옆으로 가면을 쓴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냥 어설픈 가면이 아니라 깜짝 놀랄 만큼 정교한 가면이다. 뒷덜미가 쭈뼛할 정도로 그 느낌이 강렬하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도 연이어 나타난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그냥 막 찍어도 되나? 같이 사진 찍어주고 돈 받는 그런 사람들 같아.”
남편이 말했다.
“내 생각엔 시에서 운영하는 행사인 것 같아. 그냥 개인이 한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데? 카메라를 메고 같이 다니는 사람도 있는 걸 보니.”
“아 그런가 보다! 누군진 몰라도 생각 참 잘했네. 여행하는 게 한결 재밌어. 중세시대로 들어온 것 같아!!”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줬더니 깜짝 놀라며 지금이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이냐고 묻는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니'라고 답했다. 베네치아로 향하는 길에 당연히 볼거리나 맛집을 안 찾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이 축제기간인지는 검색해보지 않았고 그런 글도 보지 못했었다.
“아니, 축제기간은 아닌데 시에서 운영하는 행사인가 봐.”
몇 분 뒤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지금 찾아보니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 맞아. 장난하냐?"
“아, 지금 축제기간이야? 이게 그럼 그 유명한 베네치아 가면축제야?”
"그래, 세계 3대 축제라는 베네치아 카니발이다 이 사람아."
친구는 덧붙였다.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더니,
얻어걸리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는 가면 쓰고 분장한 사람들이 너무 재밌어서 열심히 따라다니며 구경했다. 이 카니발이 아니었으면 도대체 베네치아에서 무얼 즐겼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비록 궂은 날씨였지만 아름다운 운하와 미로 같은 골목골목, 아이들의 시선을 한참 붙잡은 유리공예들을 구경하다 보니 봐두었던 젤라토집에 다다랐다. 과연 유명한 집이라 거기만 줄이 길었다. 우리가 막 줄의 맨 뒤에 합류했을 때였다.
관광객들 한 무리를 데리고 가던 가이드가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가리키며 익살스러운 말투로 소개했다.
“보이시죠? 자 여러분, 여기가 베네치아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토 집입니다!!”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보며 나는 앞뒤를 살펴봤다. 과연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일본인이었다. 어떤 이유일까?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성향이 더 강한 걸까?
나는 가이드의 그 놀리는 듯한 말투가 살짝 거슬렸다. 그래서 웃으며 지나가는 관광객 무리 중 한 사람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여기가 진짜 제일 맛있는 집이라는데?
너도 도전해 봐!"
몇몇이 솔깃해하며 "그래? 나도 여기서 먹어보고 싶어!" 라고 외쳤다. 그러나 가이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거기서 거기지 뭘,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아이스크림 덕후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도 실망스러운 젤라토 가게가 있음을 경험했다. 젤라토만큼은 특별히 우리 한국인들이 맛있다는 데서 먹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멋진 곳에서 서성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먹어제끼는 것. 단 것을 먹지 않는 남편은 그런 우리를 구경하며 하릴없이 앉아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번 우리 여행의 큰 기쁨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