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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 산에 오르다

by MARY

이 모든 일은 작은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산에 오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산은 올라서 정복하는 대상이 아닌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느 날 친구들이 어딘가 가는 계획을 하고 있었고 나에게 가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왜 거기서 어디에 가느냐고 정확히 물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대충 놀러 간다 생각하고 흔쾌히 제의를 받아들였다.

출발하는 당일도 캐주얼한 옷차림에 별다른 준비 없이 길을 나서서 버스를 타고 이런 광활한 풍경을 보게 되어 좋다고만 생각했다.

이 오솔길 까지도 참 좋았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날의 일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산이 나타나더니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제야 혼자 깨달았다. 오늘은 등산을 하기 위해 모인 거구나.

이제 와서 안 간다고 할 수도 없고 심호흡 한번 하고 등산길에 오르게 되었다.

날씨도 왠지 을씨년스럽고 구름도 잔뜩 껴서 왠지 내 마음 같았다.

산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무엇보다도 등산로가 따로 마련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에 가까웠다.

길이 나 있는 게 아니라 요령껏 바위 사이를 잘 딛고 올라서야 했다.

사진을 보며 글을 쓰는 지금도 왠지 오금이 저려온다.

막상 산에 오르자 그 풍경은 실로 놀라웠다. 아무래도 등산과는 친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풍경을 보는 일이 인생에서 손에 꼽을 터이니 아주 진귀한 경험이 되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함께하니 나름 즐겁기도 했다. 아무리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도 결코 혼자 해낼 수 없는 것도 있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 휴식 겸 챙겨 온 밥을 해 먹었다.

생각해 보니 대부분이 스위스 사람이었던지라 그들에게 등산은 일상이었기에 전혀 힘든 티도 나지 않았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친구가 나를 전담으로 맡아서 어디를 디디면 되는지 코치해 주고 물도 모자라면 흔쾌히 내어주었다.

아마 난생처음으로 산 정상에서 이렇게 사진도 찍어보았다.

정말 힘들었으나 정상에 선 그 순간은 감격이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야 매 순간을 즐길지는 몰라도 등산을 무서워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정상에 다다랐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정상까지는 그럭저럭 뿌듯하고 좋았으나 내려가는 길이 문제였다.

언젠가 산에 오를 때는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산에 오를 때 기운이 다 빠져서 내려가는 길은 흘러가듯 내려가고 싶었으나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멋진 경치와 자연에서 뛰노는 양도 보였다.

발목은 이쪽저쪽 꺾이고 에너지는 고갈되어 가고 한계에 부딪혔다. 내려가던 도중 어떤 오두막을 본 것 같았다. 현실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는 걸 알지만 아주 잠깐 저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렇게 내려오다 보니 드디어 평평한 땅에 닿았고 내심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이 촉박해서 더 빨리 움직인 것도 있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티켓을 주머니에 보관했던 터라 급히 꺼내니 너덜너덜해져 있었는데 버스 기사님은 유쾌하게 받아주셨다.


아일랜드에서 등산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지만 이 또한 나에게 이국적인 경험이었기에 비록 힘들었지만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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