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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 성(Merlin castle)을 탐험하다

by MARY

골웨이에서 지낼 적에 종종 따분한 주말이 찾아왔다.

딱히 해야 할 일은 없으나 아주 늘어져있을 기분도 아닌 그런 날은 굳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곤 했다.

그중에서 제일 유용하게 쓰인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구글맵을 쓰는 것인데, 현 위치 주변으로 지도를 펼치고 갈만한 곳이 있나 찾아보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도 의외로 근사하고 괜찮은 곳을 근처에서 찾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명소가 아닌 발견과 탐험이기 때문이다.

구글맵을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결국 성 하나를 찾아냈다.

생각해 보니 골웨이에서는 아주 근사하고 웅장한 성이 아니어도 도시 곳곳에 고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역사도 깊을 것으로 보이지만 모든 성이 딱히 관리가 되고 있는 모습은 아닌 듯했다.

그럼에도 내 눈에는 이국적이고 멋진 고성으로 보였다.

멀린 성 까지는 걸어서 대략 1시간 정도이니 산책으로도 제격인 거리였다.

원래도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골웨이에서는 대부분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녔다.

삶이 비교적 바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번잡하지 않은 거리를 내 속도로 걸을 수 있는 게 나에게는 자유였다.


멀린 성에 거의 다다라서 길을 조금 헤맸는데, 분명 거의 다 왔을 위치인데 성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었다.

내가 길치인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그 동네의 분위기가 조금 스산한 탓에 살짝 긴장을 한 이유도 있었다.

일요일 대낮에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동네. 게다가 어린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활기가 안도는 동네.

마치 영상을 틀어놓고 음소거 기능을 켜놓은 것 마냥 위화감이 드는 분위기였다.

오면 안 될 곳을 온 것은 아닐까 순간 괜한 걱정도 됐다.

골웨이에서 지내면서 대부분은 안전하고 여유로운 삶이었으나 아주 가끔씩 이렇게 혹은 이보다도 긴장되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외국인이고 어쩌면 언어에도 한계가 있을지 모르니 정신을 두 배는 바짝 차리려고 했다.

다행히도 목적지였던 멀린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성 자체도 작고 숲 한가운데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비는 안 오는 날이었으나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 주변이 어둑했고 이 숲에 고성 그리고 나뿐인 이 상황.

낯선 요소들만 어떻게 용케 골라서 한 군데 모아놓은 상당히 어리둥절한 느낌이었다.


사실 산책할 곳이 필요한 것이었고 이 성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온 김에 한번 구경을 해 보기로 했다.

아주 오래돼 보이는 외관에 비해 꽤나 견고하게 지어진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멀리서 본 것에 비해 가까이서 보니 높이도 꽤 되었다.

나는 이런 고성을 보면 어떻게 그 옛날에 이런 성을 지을 수 있었는지 너무도 궁금해진다.

나중에 멀린 성에 대해 찾아보니 12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그 옛날에 이런 높은 성을 이렇게 견고하게 지었다니 또다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을 둘러 숲 쪽으로 가보니 성에 대한 설명과 주변 숲에 대한 지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숲에 사는 특별한 동식물들이 있는지 따로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이미 오는 길부터 그러했고 여기 와서도 그 어떤 사람도 만나지 못했으니 스산한 기운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용기 내어 숲도 한번 구경해 보려던 찰나,


칠흑같이 어두운 숲의 입구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 사실 한국에 지내면서는 이런 숲을 마주할 일도 거의 없을뿐더러 산이랑도 친하지 않으니 더더욱 낯선데 이 신비한 숲은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고 공포스러웠다.

한 발자국이라도 들이고 싶은 강한 호기심이 일었으나 내 목숨은 하나고 여기 아무도 없는 이 상황에 호기심을 앞세우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닐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내내 나 홀로였던 멀린 성 탐험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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