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친한 친구랑 만나서 여행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따로 하지만 우연히 동 시기에 유럽에 체류하게 되었다. 비록 가깝지는 않았지만 한국보다야 시차가 적으니 종종 연락하면서 내심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당시 친구는 유럽 곳곳을 배낭여행 중이었고 나는 아일랜드 거주 중이었다. 내 아일랜드 비자가 나올 때쯤 친구가 계획했던 일정이 마무리되어 서로 만나자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저녁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도를 살피며 어딜 가면 좋을지 정했다. 여행책자나 소셜미디어를 참조한 게 아닌 순전히 지도를 보고 여기 흥미롭겠는데 하는 나라 세 군데를 골랐다. 그 첫 번째가 루마니아.
친구는 하루 전날 먼저 도착했고 나는 다음날 새벽부터 출발하는 일정이었는데 먼저 간 친구가 그날 저녁부터 연락이 닿지 않아 계속 걱정이 되었다. 루마니아와 관련한 무시무시한 뉴스도 몇 본 적이 있는터라 이미 상상 속으로는 국제경찰까지 불렀다.
그럼에도 일단 여행길에 올랐다.
루마니아 국적기인 블루에어를 이용했는데 지금까지 타 본 비행기 중 가장 허름한 편이었고 착륙 시 캐비닛이 여럿 활짝 열리는 묘기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사히 목적지까지 비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행히 친구는 연락이 닿았고 알고 보니 초저녁부터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취침을 한 것이었다.
루마니아 수도인 부쿠레슈티의 첫인상은 '이국적이다'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실 루마니아라는 나라를 매체에서 쉽게 볼 일은 없었던 터라 상당히 신선했다. 생각해 보니 아일랜드가 인생 첫 유럽 국가였으니 루마니아에 와서야 드디어 유럽 대륙을 밟아 본 것이다.
나는 스러져가는 와이파이를 붙잡고 물어물어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감으로 일단 아무 신호등에 섰고 반대편에 왠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극적으로 만났고 이 만남을 아마 평생 기억할 것 같다.
하루 종일 공복이었던 터라 속히 식당을 찾아서 끼니를 해결했다.
Salmale이라는 캐비지롤과 슈니첼이었던가... 돈가스 같은 튀김도 같이 먹었다.
맥주까지 곁들이니 첫 식사로 아주 꿀맛이었다.
이국적인 풍경을 맘껏 만끽하며 아주 친절한 에어비앤비 주인을 만나 키를 건네받고 집으로 향했다.
집은 스튜디오였는데 아주 아주 깔끔하고 쾌적했다. 처음 집을 잘못 찾아 헤매고 문에서 키가 안 뽑혀 고생 좀 했지만 대만족 한 숙소였다.
사실 우리의 루마니아 여행은 그랬다.
드라큘라가 유명한 루마니아 라지만 드라큘라 성까지는 다른 도시로 이동,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에 그냥 이 루마니아에 존재하는 자체를 즐기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마침 숙소도 지금껏 여행한 그 어떤 숙소에 비해 초호화급이었으니 휴식에 보다 의의를 두었다.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일단 근처 마트에서 장을 실컷 봐다가 아침저녁으로 근사한 식사를 해결하고
거실에 마련된 거대한 소파배드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식사까지 즐겼다.
영화는 더티댄싱을 봤는데 영화마저 명작이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친구가 챙겨 온 타투스티커를 함께 해 봤는데 생각보다 좋은 퀄리티에 여행 기분을 내기에 제격이었다. 둘이서 하나씩 하고 신나는 아침을 보냈다.
떠나는 날이 되자 이 나라를, 도시를 떠나기 전 둘러보기로 했다.
아주 역사적인, 부쿠레슈티 명소로 꼽히는 루마니아 인민궁전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이름답게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된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저 거리를 걸어도 처음 보는 건물 양식에 시선이 갔고 평일이었나 주말이었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리가 대부분 한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도로에 보이는 차가 대체적으로 컬러풀한 게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검은색 혹은 흰색 차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대비되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루마니아 정교회의 교회로 보이는 건물도 구경하였는데 지금 까지 봐왔던 그 어떤 성당이나 교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래서 여행을 하고 넓은 세상을 보며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는 평범한 것도 신비해 보이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굳이 살펴볼 일이 없는 것도 여행객의 눈에는 근사한 포톤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뭔지 모를 저 벽에 걸린 그림과 이 자판기가 세상 신기하고 멋스러워 보였다.
루마니아에서 마지막 식사로 한화 100원가량 하는 핫도그를 가게를 찾았다.
아주 기본적인 핫도그였으나 100원 정도라니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겁도 없는 나와 친구는 야간버스까지 시간이 좀 남자 역 근처의 잔디에 누워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즐겼다.
당시에는 서로 친한 친구라는 방패가 있었고 호기로울 나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결코 누군가에게 추천할만한 행동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전철을 타고 야간버스 정류장까지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중간에 슬로베니아를 거쳐서 가는 일정으로 장장 16시간의 여정이었다.
플릭스 버스도 처음인데 여행 시간이 상당했다.
하지만 즐거운 여행객의 마음으로 휴게소에 들를 때 밖으로 나와 스트레칭도 하고 고단했던 탓에 거의 자면서 긴 시간을 여행했다.
다음 여행지 부다페스트가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