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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Feb 07. 2021

주목받지 못해 두려울 때가 온다면

애 보며 애니 보기 (8) - 앵그리버드 2

"아빠, 아주 조금만 할게, 응?"

"숙제 다 하고 와." 


약해지려는 마음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짐짓 없는 위엄을 단전에서부터 끌어모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아이는 풀이 죽어 숙제 앞으로 물러난다. 개학날이 코앞인데, 방학숙제인 그림일기 마지막 장은 12월 말 크리스마스에서 끝나 있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밀리는 건 내 DNA의 유전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성인가.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은, 아이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게이머의 길로 들어섰다는 데 있었다. 뽀로로보다 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어린이집 때처럼, 애니보다 재미있는 '캐리 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던 유치원 때처럼, 아이는 나름 성장의 테크트리를 차곡차곡 밟아 올라가고 있지만, 아빠는 점점 더 마음이 불편하다. 이 나이에 이만큼을 허용하는 것이 양육자로서 과연 맞는가. 육아에 공식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찾아 읽고픈 마음이다. 


게임에 대해 그 자체로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기보다는, 게임을 하며 아이가 쏟는 시간과 열정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두렵다. 아이가 게임을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숙제를 핑계대고 있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좋은 쪽을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 나도 인생의 대부분은 학교가 아니라 어릴 때 게임을 하면서 배웠는데 뭐... (전형적인 아빠들의 자기합리화인가.) 만사 제쳐놓고 게임만 붙잡고 있다 혼난 경험을 떠올리며, 게임에 대해 관심이 큰 아이의 기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앵그리버드 2>는 그러다 만난 애니메이션이었다. 한참 앵그리버드 게임을 즐기던 아이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우연찮게 같은 캐릭터를 본 것. 애니메이션이 먼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 등 파생상품이 생겨나는 통상적인 콘텐츠 문법과는 달리, 게임의 주요 캐릭터를 바탕을 나중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나도 흥미가 생겨 함께 아들과 한 시간 반 남짓 정주행을 했다. 


아이의 평은 대체로 후한 편이었다. 이미 게임을 통해 대략적인 캐릭터들의 성격과 특징에 친숙했던 터라, 애니메이션도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와 같이 장단을 맞춰주느라 오랜만에 앵그리버드 게임을 하며 봤던 캐릭터들이 극 속에서 보다 입체적인 스토리를 그려내는 것을 함께 흥미롭게 지켜봤다. 계속 보다 보면 뜬금없이 아빠가 더 빠져드는 포인트가 있는 작품들이 있곤 한데, <앵그리버드 2> 역시 그러한 면이 있었다. 이를테면 극 중 주인공 격인 '레드'의 성장 서사가 그렇다. 


전편인 <앵그리버드>를 보진 않았지만, 본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도 전편의 줄거리가 어떤지는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레드는 태어날 때부터 '아싸' 였으나, 서로 대립하는 두 부족인 새와 돼지들 간의 대결에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며 '인싸'로 거듭난 캐릭터다. (써놓고 보니 고구려 주몽 설화랑 비슷하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구조가 등장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전편에서의 영광이 본편에서 이어지지 않는다는데 레드의 고민이 있다. 레드에게는 그것이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새로운 빌런이 등장, 갈등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전쟁을 대비해야 함을 주장하는 소신파이자 주전론자인 레드는 점차 잊혀져 간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잊힌다는 두려움
또래 집단으로부터 이전만큼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꼬마버스 타요>를 비롯한 어린이 애니메이션들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인데도, <앵그리버드 2>를 보기 전까지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 아이들에게도, 어른이 되어서도 모두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는데 말야.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인 만큼, 작품 속에서 레드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다른 멤버들과의 조화로운 팀워크'라는 모범 답안을 통해 극복하고, 한 뼘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며 해피엔딩으로 나아간다. 


다 보고 나서 재미있었다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이의 옆모습을 힐끗 보며, 2050년쯤의 미래를 상상했다. 아이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흰머리 걱정하기 시작하는 어른이 되면, 이 친구는 과연 아주 어렸을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속에 담겨 있는 행간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아!"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어릴 때 했던 게임이, 무심코 보았던 애니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다시 곱씹어보지 않을지, 미래의 내가 아직 그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어릴 때 한 번, 자라서 또 한 번 더 즐거움을 주는 게임과 애니들이 무엇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좀 더 아이에게 부드럽게 권해줄 수 있을 텐데. 물론, 인생이 반드시 영화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앵그리버드 2(2019),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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