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네 할아버지는 말야
"자~알 나왔어!"
사진을 찍어줄 때마다 아버진 항상 버릇처럼, 글로서는 온전히 그 높낮이를 표현키 어려운 그 두 마디를 내뱉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곤 했다.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 시절부터의 습관이었으니, 뷰파인더 속 피사체가 마음에 썩 들었다는 자신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곧잘 잊곤 하지만, 디카가 보편화되기 전만 해도 사진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찍는 그런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을 데리고 나간 모처럼만의 나들이 길, 입버릇처럼 되뇌던 "자~알 나왔어!" 두 마디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하는 당신만의 감탄사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나는 내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그 독특한 두 마디 음성을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들었다. 나는 어떠한 시공간 속에 있더라도 그 음성을 듣자마자 아버지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런 톤으로 그 두 마디를 내뱉을 만한 사람은 전 지구 상에 우리 아버지밖에 없으니까.
지난주 금요일은 첫째 수현이의 유치원 발표일이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부터 집에 와서 노래에 맞춰 무엇인가 흔드는(?) 동작을 하길래 유치원에서 희한한 것도 애들에게 가르치는구나 하고 무심히 지나쳤었다. 그게 연말 발표회를 위한 것인 줄은 날짜가 다가와서야 알았다. 조막만 한 녀석이 어느덧 자라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만 해도 신기한데, 연말이라고 무엇인가를 배워서 부모들을 앞에 세워놓고 발표를 한다니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어렸을 때 나처럼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다른 아이들 다 하는데 혼자 멍하니 서있다가 우는 건 아닐까 등등 별 시답잖은 걱정을 다 했다.
다섯 살부터 일곱 살까지 수십 명의 원아들을 강당에 한데 모아놓고 진행되는 한 시간 반 가량의 발표회였다. 조금 이른 저녁에 시작되는 일정이었던지라 칼퇴근을 해도 제시간에 맞춰 갈 수 없어서, 회사에 당당히 반차를 내고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엔 비로소 부모가 된 기분도 스리슬쩍 들어 혼자 으쓱했다. 교회 부설 유치원인지라 교회 강당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미 먼저 와 있었던 아내,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이 자기 차례에 맞춰 무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멀찌감치 뒤에서 지켜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이가 속해 있는 지혜반의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이 올망졸망 줄을 지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라? 왜 이러지? 하는 생각과 거의 동시에 머릿속에서 아버지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얼른 앞에 나가서 아들 사진을 예쁘게 찍어줘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보시고 너무나도 좋아하셨을 풍경이었다. 아버지는 나조차 제치고 가장 먼저 달려 나가 본인의 스마트폰을 꺼내 이렇게 저렇게 손주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내 눈앞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자알 나왔어!"를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몇 번이고 추켜올리는 아버지 특유의 그 모습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앞에서 재롱부리는 모습을 너무나도 보고 싶어 했던 분이기에, 자식들에게 그러했듯 똑같이 그러고 계셨다.
얼른 눈가를 훔치고 수현이가 혹시나 아빠를 못 찾을까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던 아이는 어느덧 나를 보고 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리고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준비한 공연을 시작했다. 내 우려와는 달리, 수현이는 중간에 머리띠가 벗겨지는 돌발상황 속에서도 무사히 제 역할을 다 해냈다. 준비한 노래와 율동이 연달아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가 내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아이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줬다.
수현이가 몇 차례 더 무대에 올라 노래와 율동, 악기 연주를 하는 동안 난 계속 아버지가 함께 이 광경을 보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냥 귀엽기만 한 아이들의 노래와 율동, 그 맑고 아름다운 모습을 나는 아버지와 둘이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진 흐뭇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계셨다. 물론 "자알 나왔어!"라는 말도 연발해가면서.
# 덧붙이는 글 (2019/11)
잊혀진다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 있을까. 아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를 절대 보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오빠는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울게 될 것이라고 100% 단언하기에, 너무 무서운 나머지 아직까지도 감히 그 영화를 볼 엄두를 못 낸다.
망자에 대한 영화라 했다. 잊혀짐에 대한 영화라 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는 그 영화와 맞대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 중에는 제사 같은, 때론 굉장히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옛날 어르신들은 왜 또 그렇게 겨울에 많이 돌아가셨는지, 한 달에 몇 차례 제사를 지내다 보면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매번 제사를 치를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그 시간이 잠시나마 돌아가신 분,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신 조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고, 얼굴도 못 봤지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어슴푸레 상상해보는 그 위 세대 조상님들의 삶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
그래서, 나는 아쉽기만 하다. 아들 수현이가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짧아서. 아직은 기억하고 있지만, 그 기억들이 커가면서 점점 더 희미해지고 아득해지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너무나 예뻐한 손주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가끔씩 영상도 보여주고 사진도 보여주곤 하지만, 수현이에게는 절대적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나중에 이 아이가 조금 더 크게 되면 '네 할아버지는 이런 분이었단다.'라는 이야기를 좀 더 생생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 역시 부인하고 싶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나브로 아버지와의 추억을 점점 잊어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기에, 한 가지 에피소드라도 하나씩 짜내어 기록해두고 싶다. 옛날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랄까.
수현이가 나중에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굉장히 힘들 때도 있는 게 인생이라지만, 그럼에도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고, 아낌없이 축복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면역력처럼 너를 항상 감싸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는 조금 일찍 떠나시긴 했지만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마음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