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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Sep 29. 2021

내면 - 보이지 않는다는 것

직장생활 영감사전 25 - (4) 내면

"전 피비의 첫 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역할 제안이 온 건지 몰랐어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가슴 아픈 순간이었어요. 제 커리어를 통틀어 항상 그랬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자고 나란 분들이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한국계 미국인들은 이런 큰 고통을 안고 살아요. 우리 정체성의 한 부분은 미국 문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언제나 큰 노력을 해왔어요. 동양인과 한국인의 얼굴이 더 보일 수 있도록.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러도요. 스토리텔러가 되면 주인공으로 옮겨가고요.


미국 문화에 우리의 모습이 반영이 안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건 사람들의 심리에 매우 깊은 영향을 끼치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에도 미치고 어떤 식으로 변화를 일으킬지에 대해서도요.


그래서 제 에이전트가 저에게 "(주인공인) 이브야, 이브의 역할을 맡은 거라고"라고 했을 때 저는 어떻게 내가 그걸 놓쳤을까 했었어요. 어떤 면에선 웃기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정말 아는 사람들은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거예요. 한국계 미국인들은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정말 잘 알아요."




1. 드라마 '킬링 이브'에서 주연을 맡았던 한국계 미국인 여배우 산드라 오의 1년 전 인터뷰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통역이었던 샤론 최가 인터뷰어로써 산드라 오와 40여 분 남짓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속 '크리스티나 양'으로 유명한 산드라 오는 인터뷰 속에서 한국계라는 마이너리티로서 겪는 미국 내에서의 교묘한 차별과 차별의 내면화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오스카를 수상할 때 그가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불리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 스스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언급합니다.


3. 인터뷰어인 샤론 최는 산드라 오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한국은 아직 인종차별에 대한 대화를 이어갈 만한 수준의 언어조차 없는 것 같다고 답합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점을 꼬집습니다.


4. 샤론 최가 언급한 것처럼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도 빠르게 다민족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구성이 바뀌어가는 만큼,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수 집단들에 대해서도 미디어들이 이전보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정상회담' 등의 예능이 대표적이고, TV 속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방송인들도 과거 대비 많이 늘어났습니다. 어느덧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약 250만 명, 전체 인구의 5%에 가까운 규모로 성장한 것을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5.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소수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단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산드라 오의 말을 빌린다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소수자 집단이 미디어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느냐는 사회 속 구성원들의 내면에 자연스레 영향을 미칩니다. 주류 매체가 드라마와 예능 등에서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특정 집단에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적대적이 될 수도, 친화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 드라마도, 예능도 여전히 제작 과정에서 세밀히 고려해야 할 점이 많습니다.


7. 외국계 한국인들 그리고 한국에서 터 잡고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들 역시 한국계 미국인들이 가지는 복합적인 감정과 비슷한 마음을 적잖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들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드라마를 보며, 예능을 보며 쉬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자신들의 문화가, 주류 사회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이해되지 못한다는 것은 꽤나 슬픈 일입니다.


8. 약간은  지난(!) 인터뷰를 뒤늦게 보게 되고 나서, 문득 산드라 오가 '오징어 게임' 봤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기생충' 마찬가지로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하면서  세계적으로 성공한  K-드라마를 산드라 오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어쩌면 인터뷰 첫머리에 그녀가  말을 되새기며, 한편으론 흐뭇하게, 또 다른 한편으론 통쾌하게 드라마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변화는 우리의 생각과 내면을 진정으로 바꿔야지만 따라와요.
세상을 자기만의 관점에서 보고 있으면 어떤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이제는 깨어날 때에요."


*Photo by Michael Dziedzic on Unsplash




참고한 콘텐츠

기생충 통역사 샤론 최의 산드라 오 인터뷰

https://youtu.be/xvVKwUXv5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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