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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Aug 27. 2022

아무렇지도 않게 평양 여행 가는 날

읽고 생각하고 쓰고 (18) - 평양,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남조선은 뭐고 또 북조선이 다 뭡네까? 우리 형제 아닙네까? 그냥 서울에서 왔다고 하십시오. 저도 평양에서 왔다고 하겠습네다.”


”꼭 나라 전체가 통일해야만 통일입네까? 서로 왔다 갔다 하고 기차도 다니고 하면 좋지 않겠습네까? 지자체처럼 운영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네까?”


이래저래 여행 짐 싸는 걸 좋아해서 철들고 난 뒤 베이징에 세 번, 하노이에 네 번, 그리고 먼 아바나에도 두 번 다녀왔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평양은 아직 가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언제 가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평양은커녕 북한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했는데 북한학 박사라니 멋쩍을 노릇.


<평양,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는 영어강사로 일하는 저자가 외국인으로서의 법적 정체성(?)을 십분 발휘하여 다녀온 북한 여행기다. (한국 여권 가진 분들은 그대로 따라 하심 안돼요)


정재연 작가는 한국에서 호주로 귀화한 한국계 호주인이다. 하지만 자라서 호주로 가기 전까지 한국에서 줄곧 자랐으니 심적으로는 한국인이나 마찬가지. 어렸을 적 반공 웅변대회에도 나가본 기억을 갖고 있는 저자가 평양과 개성을 둘러보는 가운데 겪는 에피소드들과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가 그리 무겁지 않은 필치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마음 아픈 경험담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일주일 남짓, 그것도 패키지로 해외여행 다녀온 게 무슨 특별한 일이겠나. 그런데 적어도 북한 여행은 여전히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희귀하고 생소하다 못해 책으로까지 나올 만한 경험이 된다. 남북교류가 줄어들다 못해 소멸할 정도인 2020년대 한국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고나 할까.


책을 통해 얻는 간접 경험도 필요하지만, 그래도 살다 보면 직접 몸으로 부딪치지 못하면 느끼고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다. 사람들이 철마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런 그 때문일 테다. 4K 해상도 랜선 여행이라도 직접 돌아다니는 여행에 비할까. 줌과 메타버스가 요즘 한풀 꺾인 것도 비슷한 이유일 테고.


며칠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날에 중국대사관  중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고 보면 베이징도 하노이도 한국 사람들이 함부로 여행  가던 시절이 고작 30 전이다. 다음 30 내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지금은 누구나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그때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되지 않을까? 칠흑같이 깜깜하기만  남북관계도 2052년쯤에는  나아져서, 서울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평양 여행 가고, 평양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울 여행 오는 시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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