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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Sep 21. 2022

청춘의 소망

읽고 생각하고 쓰고 (19) - 하얼빈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시국이 엄중할 때, 신하를 독대하는 메이지의 말은 때때로 짧고 모호했는데, 여러 의미가 겹치는 그 몇 마디를 신하들은 두려워했다.”


“아버지가 죽자 아들이 태어나는 질서는 삶과 죽음이 잇달음으로 해서 기쁘거나 슬프지 않았고, 감당할 만했다. 모든 죽음과 모든 태어남이 현재의 시간 안에 맞물려 있었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있는 책을 읽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그래도 김훈인데 하고 사서 읽었다. 하얼빈이라고 표지에 쓰여 있지만,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안중근이라고 읽을 소설.


안중근의 이야기는 기대만큼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작가는 이토를 죽이러 하얼빈에 들어가는 서른한 살 청년의 마음을 담담히 그려내고자 하였다지만, 김훈의 안중근도 남북에서 공히 칭송받는, 역사상 몇 안 되는 완전무결한 독립운동가의 모습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안중근이라는 존재의 아우라 자체가 실제 그렇게 올곧았기 때문이리라. (작가도 사건의 신문과 공판 기록이 ‘소설적 재구성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긴장되어 있다’ 고 적고 있다.)


오히려 이야기 속 빌런이라 할 수 있는 이토의 심경, 그리고 뮈텔 신부의 심경에 대한 부분들이 새로이 읽혔다. 어릴 때처럼 단순히 나쁜 놈이라고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는, 그런 캐릭터들. 안중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력을 잘 몰랐던 터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인간 세계의 삶이 늘 딱 선악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어서일 수도 있겠다.


어느덧 일흔을 넘긴 작가는 코로나 시기에 한차례 앓고 나서 남은 여생을 생각했단다. 그리고 청춘의 소망이었으나 그간 엄두가 나지 않아 미뤄뒀던 작업에 착수했다고 후기에 썼다. 일흔 넘어 완성한 청춘의 소망이라는 말을 보다 잠깐 아득해졌다.


회사와 집을 오가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만 십오 년이 지나 있다. 안중근의 나이는 진작에 넘어섰고, 이젠 뮈텔의 나이를 향해 가고 있다. 물론 요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여생에 대해 생각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하지만 여생, 남은 시간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번쯤 하얼빈에 가 보고 싶어졌다. 겨울이었으면 하는데, 아주 먼 미래는 아니었음 한다. 과거엔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존재들을 마주하고 나면, 여전히 도통 모르겠는 이 세계의 질서라는 것도 어쩌면 제법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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