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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Dec 23. 2022

케냐에선 비닐봉지를 쓸 수 없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21) - 내일을 위한 아프리카 공부

"우리 대호수 지역의 토착민들은 난민과 수천 년간 함께 해왔습니다. 우리에게 난민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쓰이는 고정된 정의와 달리 역동적이었습니다. 나쁜 지배자가 있을 때, 공동체의 일부는 그 지배자에게서 등을 돌리고 새로운 지배자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이들은 새로운 지역의 시민이 됩니다.”


“난민 캠프 한편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난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커피값을 아껴 기부해야 할 금액이 얼마인지 알려주던 국내의 단체들은 예멘의 난민들이 제주도를 찾았을 때 대부분 침묵했다. 마치 그들은 머나먼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캠프에 머물렀어야 한다는 듯 말이다.”


“케냐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를 쓸 수 없다. 2017년 케냐 환경부 장관이 일회용 비닐봉지의 생산, 판매, 사용을 금지하는 시행령을 발표함에 따라 일회용 비닐봉지의 국내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중대형 슈퍼마켓에서만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어 있지만 케냐에서는 비닐봉지를 수입하고, 제조하고, 판매하고, 들고 다니는 것이 전국에서 불법이다.”




2010년과 2012년, 우연찮은 기회가 연달아 찾아와 두 차례 짧게 아프리카에 발을 디뎌본 적이 있다. 말리와 케냐, 그나마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를 구분하게 해 준 두 번의 여행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실제 이후의 내 삶도 얼마간 영향을 받았다. (말리 안 갔으면 북한 공부도 시작 안 했을 수도…)


여하튼 아프리카에 대한 내 경험과 인식은 10년 전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내일을 위한 아프리카 공부>를 반갑게 읽었다. 책을 통해 우간다와 케냐, 남아공, 서아프리카 각국이 겪는 최근의 변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동시대의 문제인 기후위기와 일자리, 감염병 문제에 대해 이들 국가들이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배웠다.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문제의식은, 아프리카 각국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 저자는 한국과, 선진국이라 불리는 다른 나라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들 국가와 사람들을 바라보려는 관점을 의식적으로 유지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쉽게 노출되어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의 시선을 교정하고자 하고 있다.


저자가 꼬집는 것처럼, 기후나 난민 등의 영역에서는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미리 겪었기 때문에,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나름의 해결책들도 이미 갖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아프리카 각국의 경험을 충분히 존중하고 일방적인 공여국 위주의 개발원조를 지양하자는 논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과 다른 나라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아프리카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데까지 주장을 전개시킨 데 있다.


사업이든 정치든, 피차 주고받을 게 있어야 호혜적인 관계가 된다는 게 진리다. 아프리카를 단순한 천연자원의 공급처가 아니라 정보와 경험의 공급처로도 볼 수 있다는 시각을 제공해줘서 고마운 책이다. 이런 시각들이 더욱 많이 나와주기를 바라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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