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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Mar 26. 2023

서점의 시대가 지났더라도

읽고 생각하고 쓰고 (23) - 서점의 시대

“1981년 6월에 개점한 교보문고는 1천여 평 규모에 60만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초대형 서점으로 주목받았다. 우려와 달리 해마다 20퍼센트 이상의 매출 신장을 달성하고 문화의 명소로 자리를 굳힘으로써 교보문고는 서점 대형화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교보문고의 개업을 계기로 바야흐로 대형서점의 시대가 열리고 규모의 경쟁이 시작된다.”


“1997년에 '인터넷 북스토어 종로서적'(5월)을 시작으로 '영풍문고 인터넷'(6월), '교보 사이버 북센터(9월)가 잇달아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어서 1999년에는 인터넷에서만 책을 판매하는 예스24(4월), 인터파크(6월), 알라딘(7월)이 출범했다.”


“서점의 문화사에서 2000년대는 역설적인 시기다. 이때부터 각 도시에 있던 중형서점들이 하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한편, 독특한 개성을 품은 독립서점들이 등장한 것이다. 대전의 문경서적(2003), 포항의 경북서림(2005), 춘천의 청구서적(2000), 대구의 제일서적(2006), 광주의 삼복서점(2008), 부산의 동보서적(2010) 등이 이 시기에 폐업했다.”





대전 시내에 대훈서적이라는 서점이 있었다. 정확히는 대전역에서 구시가인 은행동으로 가는 길에 있던, 80-90년대 기준으로는 꽤 컸던 서점이다. 3층 정도의 건물을 모두 서점으로 활용했다. 아마 지금 신촌역 앞 홍익문고 정도의 규모였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적 기억이라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놀 때를 제외하곤 주로 그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보물섬 같은 어린이 소설이나 홈즈/뤼팽 류의 추리소설 같은 걸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요즘과 달리 만화책도 비닐포장 같은 건 안 하던 시절이라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바벨 2세, 데즈카 오사무의 밀림의 왕자 레오 같은 만화책들도 즐겨 봤다.


아마도 여름에 가장 자주 갔을 것이다. 좁고 더운 집에서 나와 책이 가득한 널찍한 공간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만화)책을 봤다.


구석에 죽치고 앉아 책을 보는데 뭐라 하는 서점 직원들이 없었다. 얼굴이 익숙해진 후로는 서점 과장님을 비롯한 직원분들이 외려 ‘또 왔네? 오늘은 뭘 보고 있니?’하고 아는 체를 해주곤 했다. 위인전이나 문제집을 사느라 셈을 치를 때가 아주 가끔 있었는데, 그때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했다. 보세요, 저 맨날 책 보기만 하고 그냥 나오는 건 아니라고요 하고 그분들에게 체면치레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그 서점에서, 나는 안온함을 느꼈던 것 같다. 선생님이나 친척들을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친절과 배려를 해주는 어른들을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손을 뻗어 알고자 할 때 나를 안내해 주는 공간.


지인들에게 ‘합정에서 망원 사이에서 서점 차리고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매년 20퍼센트씩 매출이 늘던 오프라인 서점의 시대는 애초에 지나갔지만, 그래도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삶을 살아보라 한다면 나는 서점을 고르지 않을까. 그래서 역삼에 가면 최인아책방에 들르고, 이나영책방의 팬이 되고, 속초 동아서점의 이야기에 여전히 홀린다.


문경서적도 그렇고, 그날이오면도 그렇고 서점 이야기라면 할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말이 길어져서 오늘은 이만 마무리. (그러고 보니 옛날 생각 하느라 책 이야기를 정작 넘 못했네? ‘한국 서점사’라고 명명해도 좋을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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