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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목욕

3. 추억을 상속받다

by 자민

얼마 전부터 주말 아침마다 혼자 사우나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은 시간, 아직 세상이 조용할 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는 게 나쁘지 않아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종종 찾고 있다.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데, "끼익"하고 문 여는 소리와 함께 한 부자가 서로 손을 붙잡고 들어온다. 딱 나와 우리 아들 또래 정도 되어 보인다. 지난번에도 저만한 아이가 아빠와 함께 왔었는데 하고 생각하는 찰나, 아이는 사우나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아빠한테 한 바가지 혼난다. 그리고선 조금 시무룩해있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아빠 얼굴을 보고 까르르 웃는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 있는 무뚝뚝한 아저씨들 얼굴에 조금이나마 웃음기가 피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아이 하나의 몸짓이 이 작은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러고 보니 나도 30여 년 전에는 이렇게 똑같이 매주 목욕탕에 왔었구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치 영원히 그러할 것처럼. 은성장이었나 미성장이었나. 이젠 이름마저 가물가물한 이름이다.


그땐 일요일 아침마다 뒷골목에 있던 목욕탕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말 일과였다. 작은 가게에 붙어있는 방 한 칸에서 네 가족이 살았던 시절, 화장실도 없는데 샤워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일주일에 한 번 몸을 씻으려면 목욕탕 밖에는 별 방법이 없었다. 새집 진 머리로 졸린 눈을 비비며 목욕탕에 가서 온몸이 빨갛게 될 때까지 아버지에게 때밀이를 당하고 요구르트 하나 빨면서 나오면 어느새 나른한 점심 무렵이 되곤 했다. 교외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는 거의 빼먹은 적 없던 일상의 공간이었던 목욕탕, 그 공간에 차곡차곡 쌓였던 기억을 나는 어느새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아버지와 매 주말 아침을 보내는 동안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어린아이에게는 꽤나 황망했을 기억.


뜨거운 온탕과 냉탕을 몇 번이고 번갈아 왔다 갔다 하던 아버지의 피부는 언제나 새빨갰다. 탕 밖에 나와서도 한동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른 아저씨들보다 빨간 몸 때문에 멀리서도 구분하기 쉬웠다. 그날도 탕 밖에 나와서는 장난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우리 아빠 몸을 발견하곤 불룩 나와있는 배를 "철썩” 소리 나도록 세게 때렸다. 근데 뭔가 익숙한 촉감(!)이 아니어서 위를 올려다보니 엄청 험상궂은 아저씨가 아니던가. "젠장, 망했다."라고 문어체로 표현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그런 느낌을 살면서 처음으로 받았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욕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알몸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운 사춘기가 되면서 목욕탕은 자연스럽게 내 일상에서 멀어졌다. 매주 최소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는 아버지와 맨 몸으로 투닥거렸던 시절도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갔다. 어른이 된 후 아버지와는 몇 번이나 목욕탕에 갔을까. 서울로 대학을 간 후에는 일 년에 몇 번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으니, 지난 20여 년 통틀어 아버지와의 목욕탕 나들이는 많아야 한 손에 꼽아 볼 정도에 그칠 것이다.


나중엔 조금 컸다고 아버지 등을 때밀이 수건으로 밀어줬었다. 아버지는 비록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때 잠시나마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시지 않았을지. 청년에서 장년이 되어가는 내내 없이 살았고, 소주병을 매일 밤 끌어안고 살만큼 힘든 삶이었지만, 그래도 같이 목욕탕 다니던 아들이 좀 컸다고 뒤에서 등을 밀어줄 때 앞에선 혼자 웃고 계시지 않았을까 한다. 이것밖에 못 미냐고, 힘 좀 더 줘서 더 세게 밀라고 툴툴거리시면서도.


투병하시던 마지막 두 해, 어머니가 아버지 목욕시키느라 이만저만 고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실 때 늘 마음에 걸렸다. 정작 필요한 때, 제 자리에 없는 자식. 자식이라는 게 그래서 다 소용없구나 하는, 틀린 것 하나 없는 옛말의 증명. 공부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는 평생의 변명과,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경험시키느라 어쩔 수 없었다는 새롭게 추가된 변명은 그저 말 그대로 변명일 뿐. 지금도 선히 그려지는 아버지의 등짝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잠결에 뒤척이는 아들에게 "아빠랑 목욕탕 갈래?"라고 스리슬쩍 물어보니, 아들의 대답은 역시나 "싫어" 란다. 암, 사우나든 목욕탕이든,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빠랑 일찍 집 나서는 것보다야 꿈나라에서 트와이스랑 같이 춤추는 게 낫지. 그래도 아들, 지나고 나면 아빠랑 목욕탕 같이 갔던 것도 다 좋은 추억이 될 거야. 혹시 아니? 요구르트에 더해서 엄마 몰래 장난감 들어있는 초콜릿 과자도 사줄지. 그러니 다음번에는 꼭 아빠랑 한 번 같이 가자.


요새는 사춘기도 빠르다던데... 하며 나는 어느새 아들의 잠자는 모습을 보며 혼자 자못 조바심만 내고 있다. 일에 치여 자꾸만 이 일상의 소중함을 까먹고 있을 때, “뭣이 중헌디?”하며 오늘 하루하루들을 잘 보내라고 말해주곤 하는, 조금 먼저 떠난 아비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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