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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바둑, 나의 바둑

2. 태어날 때부터 아빠는 아니니까

by 자민

수현이가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씩 다니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갖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난달부터 초급반 코스를 등록했다. (긍정적인 또래 압박, Peer Pressure란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고 보면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골프연습장 등록을 수 년째 미루고 있는 아빠보다 훨씬 낫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집에 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빠 나 1권 오늘 다 풀었다!"란다. 응? 뭐라고? 알고 보니 21세기의 어린이 바둑 교육은 아직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바둑에 대한 나의 관념을 한참 넘어선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시중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수십 권짜리 바둑 교재가 시리즈로 나와있고, 주말 동네 문화센터 수업은 이 교재들을 푸는데 방점이 맞춰져 있다. 선생님이 기본적인 개념들을 만화가 곁들여진 교재로 먼저 설명해주고, 뒤에 달려 있는 문제들을 풀면서 연습을 한 후에 아이들은 비로소 진짜 바둑돌을 집는 것이다.


아이들은 바둑을 두는 자체보다는 옆 친구의 진도에 더 관심이 많다. "A는 아직 1권 푸는데 나는 벌써 2권이야! 초등학교 다니는 B 형은 7권 푸는데 나는 벌써 3권이야!" 이런 식인데, 그러고 보면 평일에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나는 파란 띠네 너는 초록띠네 하며 띠 색깔로 서로 옥신각신 아웅다웅하는 것과 별다를 바 없다. 정색하고 보면 뭐 이런 유치한 것들이 있나 싶은데, 이들이 아직 유치원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그만 머쓱해졌다.


'흥, 그래도 문제집만 풀면서 바둑을 배운다고야 할 수 없지!'라는 지극히 기성세대다운 생각으로 바로 작은 바둑판 하나를 주문했다. 바둑판을 (게다가 뒤집으면 장기도 둘 수 있는) 받은 수현이는 마냥 신이 났다. 연필로 문제집에 까만 동그라미를 쳐 가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도 재미지만, 흑돌로 백돌을 주르륵 감싸서 따먹는 쾌감도 그에 못지않은 듯 날이면 날마다 바둑을 두자고 아빠를, 엄마를, 할머니를 괴롭히고 있다. 물론 제가 조금만 불리하면 판을 뒤엎는 파격(!)도 매일같이 시전 중이다.


조금 일찍 퇴근해서 아직 수현이가 잠들어 있기 전에는 거의 매일같이 바둑과 (그새 배운) 장기를 같이 두고 있는데, 문득 할아버지와 아버지 생각이 났다. 지금 이렇게 아들과 같이 바둑을, 장기를 둘 수 있는 것은 내가 수현이만 할 무렵 매일같이 손자를 앞에 두고 바둑과 장기를 두고, 때론 화투를 치셨던 할아버지 덕이다. 할아버지에게 매일 판판이 깨지며 배웠던 테크트리(?)가 몸속 DNA에 새겨져 있다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의 증손자에게 대갚음해주고 있는 셈이다.


묘한 것은 아버지와 바둑을 두어 본 기억은 없다는 것. 바둑판과 장기판을 놓고 매일같이 놀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대개 시골 마루에서 매미소리 들으며 할아버지와 딱 딱 소리 내며 두던 기억뿐이다. 맞은편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애써 기억을 더듬어봐도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아마도 바둑이나, 장기나 두고 앉았을 만큼 한가했던 유년시절의 내 맞상대는 역시 (농한기에는) 한량에 가까웠던 할아버지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릴 적 기억 속을 유영하다 보면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본인들의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수박을 쪼개 먹으며 부채를 부치며 바둑을 두던 그런 평화로운 광경 속 상대방은 오로지 할아버지뿐이다. 여름 내내 섯다 훈련을 끝내면 겨울에는 진짜 (비닐) 하우스에 가서 할아버지의 섯다판을 구경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바둑이 연결되는 지점에서의 기억은 엉뚱한 데서 나왔다. 아버지는 바둑을 못 두지 않았다. 심지어 좋아했다. 자다가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에 나가보면, 아버지는 TV를 켜고 따분해 보이기 그지없는 바둑 방송을 보고 계시곤 했다. 세상에 바둑 방송이라니... 그때는 이해를 못했다. 유년기를 한참 지난, 중고생 때나 대학생 때였을 것이다.


화면이 온통 흑백의 점으로 도배된 그 방송을 보며 중년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인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한 판에서 지금까지 본인이 지은 집이 몇 집이나 되는지 세고 있었을까. 그때 본인의 판세가 이미 중반을 한참 넘어 후반부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을까. 아픈 부모와 아직 장성하지 못한 자식들을 보며 인생의 활로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을까.


아이들은 커가며 집을 떠나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다. 인간이기 전에 생물이기에, 부모의 품을 떠나 작게나마 본인의 집을 지어야만 그제야 자신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부르는 게 아닐는지. 그렇게 떠나기 전, 어린 시절에 저장하는 기억의 두께는 떠난 후보다 몇 배는 농축되어 이후의 삶을 작동시키는 원료로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살아계셨다면 수현이와 매일같이 바둑을, 장기를 두는 맞은편에는 내가 아닌, 아버지가 앉아있었을 것이다. 나는 수현이의 맞은편에 내 아버지가 앉아있음을 떠올리며, 안심하고 일터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할아버지라는, 소중한 선물을 태어나자마자 담뿍 받은 셈이다.


수현이는 아쉽게도 나처럼 인생의 보너스 없이 본인의 판을 시작하고 있다. 그가 매번 본인이 불리한 판을 뒤엎더라도, 나는 가만히 가슴속 열불을 다스리고 다시 바둑을 두어야겠다. 수현이 인생의 밑바탕이 될 어린 시절 기억 속에 한 번이라도 더 머리를 들이밀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로 내 모습을 새기고자 애써야겠다. 마감은 보고서에만 있는 게 아니고, 우리 집 아이들 방 문턱에도 있다.


그나마 바둑만 가르쳐서 다행이다. 고스톱이나 섯다는 같이 안 해도 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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