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네 할아버지는 말야
결혼식은 1시 정각이었다. 막 결혼식장 앞에 선 순간, "신랑 입장!"이라는 소리가 우렁차게 식장의 공기를 때렸다. 딸은 옆에 서서 내 손을 잡고 방긋 웃고 있었다. 어라...?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딸과 단 둘이 이렇게 멀리 나와본 것은 솔직히 처음이었다. 아이에겐 먼 길일 것 같다는 핑계로 슬쩍 혼자 나서려다 아니나 다를까 한소리 듣고 나오던 참이었다. '이 미션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 자문하며 딸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서울의 주말 도로는 꽉꽉 막혔다. 결국 예상보다 삼사십 분은 더 걸려 식장에 도착했다. 맘이 급해져 둘러업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겨우 식장으로 들어가려는데, 타이밍이 말할 수 없이 묘했다. 과거에 한 번 지켜봤던 광경이, 그리고 앞으로 직접 겪게 될지 모르는 광경이 그 찰나에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어우러졌다. 옛 기억에 한 번 울컥하고, 어렴풋이 보이는 미래에 또 한 번 가슴이 살포시 메였다.
여동생은 내가 결혼한 이듬해에 바로 혼인에 골인했다. (당시 남자 친구, 지금 매부에게는 인생이 걸린 선택이라고,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분명히 여러 번 충고했지만, 기어코 듣지 않았다. 그의 인생이 고달픈 것은 온전히 그의 탓이다.) 부모님은 엉겁결에 두 자녀를 연달아 시집 장가보내게 된 셈이었다.
두 번째 결혼식이니 좀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아버지는 전혀 그런 모양새가 아니었다. 신부와 함께 입장할 때부터 얼굴은 이미 울상이었다.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에게 절하는 순간, 기어코 사달이 났다. 신부는 드디어 시집간다고 좋다고 생글생글 입이 귀에 걸렸는데, 아버지는 절을 받으며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좋은 날 저양반 또 오버하신다...'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말처럼 가족석에 앉아 있던 아들은 그렇게 무심했다. 감정의 높낮이가 심한 아버지가 딸 결혼식에는 평소보다 좀 더 과잉인 것 같다고 나름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 척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딸 가진 아버지가 되고 나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딸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던 그 장면이 자꾸 목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 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 헛똑똑이였다. 딸을 가진 아버지 마음이라는 걸 알 리가 있나. 그 입장이 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영역은 넓고도 깊었다.
조금씩 딸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너무 급작스럽게 결혼식장 앞에 섰다. 식장 앞에 딸과 단둘이 서게 되니, VR기기를 쓴 것처럼 초현실적인 느낌이 몰려왔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들이키고 나서 아침을 맞았을 때 이런 멘탈이었나. 아, 그때 아버지 마음이... 내 능력으로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묘한 느낌에 둘러싸이며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황급히 눈을 깜박였다.
세 살박이 아이에겐 꽤 긴 결혼식이었다. 그래도 딸은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식이 끝날 때까지 잘 참아줬다. 온전히 함께 한 첫 공식 외부행사를 잘 마친 기념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서 주스 한 잔 시켜놓고 딸과 같이 인형놀이를 하며 놀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길지 안 생길지도 아직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딸이 그녀의 배필을 만나 결혼식장에 들어가게 되는 날을 맞게 된다면 이번 주말 이 결혼식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만 같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스스로 다독여보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장성한 딸을 보내던 날의 아버지 모습이 여전히 가슴속에 머물고 있다.
돌아오던 길, 차에서 곤히 자던 딸의 얼굴 위로 햇빛이 비쳤다. 여전히 졸린 목소리로 눈을 비비며 "아빠 눈부셔"라고 이야기하는 딸을 보며 지금 이렇게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여름 햇빛보다 더 눈부신 딸, 언젠가는 웃으며 아비의 품을 떠나게 되겠지.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길. 축복받는 결혼식날, 아빠가 주책맞게 펑펑 울고만 있더라도 눈 흘기지 말고 그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