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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시나무 소리가 들린다

식물 박사였던 그 사람

by 자민

초등학교 5학년 때,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에 따라 곳곳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을 때였다. 몇 번의 낙방 끝에 우리 가족에게도 분양 당첨의 행운이 찾아왔고, 단칸방을 떠나는 것이 평생소원이었던 엄마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문제는 새 아파트가 대전의 끝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땐 세상의 끝 같았다. 두 시간 삼십 분마다 한 대씩 오는 시내버스 한 대가 그 동네와 도심을 이어주는 유일한 혈관이었다. 다른 아파트들 몇 개가 근처에 생기고 나서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처음 몇 년은 그야말로 산자락 아래 뚝 떨어진, 외딴섬 같은 곳이었다.


집은 자연과 맞닿아있었다. 아파트 앞에는 개천이 흘렀고, 뒤는 바로 산자락이었다. 대전역 앞 옛 동네는 바삐 오가는 행인들로 늘 정신없었는데, 이곳엔 사람은 없고 온갖 나무와 풀들만 있었다.


매주 휴일 아침마다 아버지는 산책을 하자고 자식들을 달달 볶았다. 그놈의 산책... 토요일도 등교하던 때다.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으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그때만 해도 아버진 기운이 넘쳐나는 삼십 대 후반이었다. 조르기, 간지럽히기, 음식 냄새로 애태우기 등의 신공에 나와 동생은 두 손 들고 삐죽 나온 입으로 운동화를 신었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면 바로 길이 나왔다. 요즘 용어로 치면 둘레길 비스름한 것 되시겠다. 터덜터덜 걷다 보면 아버지가 소리친다. "은-사시-나무닷!" 깜짝이야.


가까이서 본 은사시나무는 신기한 식물이었다. 이파리 뒷면이 은색처럼 하얗게 빛났다. 은색이라니. 식물이면 그저 다 초록색인 줄만 알았는데.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온갖 풀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새로운 이웃이 된 이들이여, 이름을 불러 달라.


알고 보니 아버지는 식물 박사였다. "이건 애기똥풀이여.", "이건 쇠비름이여". 물어보면 모르는 풀이름이 없었다. 인터넷이 있었던 시절이 아니다. 고작 뒷산 가는데 식물도감을 챙겨 왔을 리도 만무하니 아버지가 부르는 이름이 맞는 건지 알 길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 없이 척척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그저 경이로웠다.


삼촌과 고모들이 카톡방에 가끔씩 올리는 꽃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아버지와 함께 크고 자란 이 양반들도 꽃과 풀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 특히나 뭔가 조금이라도 입에 넣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식물들이면 더욱 그러하다. 보리수네, 벌금자리네, 아이고야 쑥 천지네. 가만히 보고 있던 나는 그제야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아, 그렇구나. 유레카. 모르는 게 더 이상했던 거로구나. 자연에서 나서, 자연에서 자란 사람. 늘 배고파서 식물들과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 자연히 식물 박사가 된 사람.


아이 등굣길에 꽃과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2020년대의 아버지는 무력하다. 장미와 팬지 말고는 아는 꽃 이름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다행히도 구글 신이 있지 않은가? 수현이는 내 휴대폰을 가로채 이미지 검색 기능을 켜고 꽃 이름을 찾는다. 이젠 제법 능숙하기까지 하다. "아빠 이 나무 이름은 조팝나무야.", "아빠 이 꽃 이름은 달맞이꽃이야." 그러고 보니 아이 허리춤에는 도감이 꽂혀 있다. 포켓몬 도감. 그냥 도감도 아니고 '전국 대도감'. 온갖 포켓몬의 이름을 줄줄 외는 아이에게 식물 이름 몇 개쯤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은사시나무가 바람에 출렁이면 '스스 스스...' 하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함께 산책을 나갔던 게 여름이었던가. 요즈음처럼 적당히 더운 날 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그 소리가 묘하게 귓가를 울린다. 그렇게 둔산으로, 크로바로 이사 가자고 엄마가 애원해도 숲이 있는 ‘한갓진’ 이 동네가 좋다며 거부했던 그분. 그 동네에선 꽃과 나무들과 함께 잘 지내고 계시는지. 여전히 하나하나 이름 잘 붙여주고 계시는지.


아침저녁으로 산책 나가기 좋은 시절이다. 포켓몬 도감이라도 들고 함께 나서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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