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부터 세계화가 시작되었는지 생각을 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몽고제국의 정벌 전쟁이라든가 이슬람의 포교, 로마제국, 알렉산더의 제국...!
세계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계를 만나 좌절되어왔다. 세계화를 꿈꾸던 알렉산더는 인도 정벌 시 병을 얻어 죽었고, 몽골제국도 칸이 죽고 아들들의 나라로 나눠지며 세계화가 멈췄다.
근래에 와서야 지리학과 천문학, 항해술, 증기기관의 발달로 세계화를 위한 노력(혹은 식민쟁탈 전쟁)이 재시도되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그 정점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교과서만 펼치면 '지구촌', '세계화', '글로벌'이라는 말이 흘러넘쳤다. 바야흐로 원 월드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과 소련의 붕괴로 만들어진 [월드]에는 초강대국과 강대국, 약소국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가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강한 나라들은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비교적 손쉽게 돈을 벌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나갔고, 약소국들은 강대국에서 기피하고 오염을 많이 만들어내는 산업들을 가져와 피와 땀을 돈으로 바꾸고 자원과 농산물을 생산하며 생존을 이어갔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본 매거진 첫 연재에서 제시한 것처럼 [판데믹 루틴]이 시작되어 버리면, 지금은 간신히 남아있던 연결의 끈을 놓아버리게 될 것이다. 한 발 앞선 리쇼어링으로 생산시설을 불러드리고 있었던 미국이나,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튼튼하고 식량안보의 위기에서 준비되어있었던 독일, 일본 같은 나라들은 그래도 잠시 한 숨 돌리겠지만 많은 나라들은 [하나의 세상]에서 분업화되어버렸고 '특정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어떤 국가는 제조업 기능이 해외로 모두 이전되어있어서, 또 어떤 국가는 식량을 전량 수입하고 있어서, 또 다른 어떤 국가는 에너지 자원을 모조리 수입하고 있어서 국가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게 되어버렸다.
앞으로 판데믹 루틴의 상황 속에서 절름발이 신세가 되어버린 국가들은 '지구촌'의 환상에서 탈출을 시도할 것이다. 이제 다시금 자신만의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고 궁수를 배치해서 봉건 군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월드가 상실되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미국이 WHO에서의 탈퇴를 선언했다. 지금도 국가 간 첨예한 무역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WTO와, 매번 의결만 하는 UN 역시 조만간 각 국의 손익계산서 앞에서 탈퇴 국가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렇게 세계 질서는 다시 한번 변하게 될 것이다.
각 국가들은 다시 봉건국가를 바탕으로 생존에 필요한 '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최소한의 전략적 동반만을 유지할 것이다.
미사일 조약, 화생방무기 조약, 오펙, 아세안, 이유, 유네스코, 국경 없는 의사회, 월드비전, 아랍연맹, 나프타, 브릭스, G20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수한 국제기구와 협력체, 조약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다.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원래 국제사회는 아나키(무정부 상태)였다!"라며, 세계 지도자와 연합체, 국제경찰이 있어왔다는 약간의 착각 속에 살아왔던 우리에게 일침을 놓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연결'이 가장 중요한 기술의 목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방호'와 '차단'이 가장 중요한 기술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자국의 인터넷 망과, 식량 공급, 에너지 공급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