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미스터 또각 펄럭

세상이 나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

by 아빠 민구


2주 전 토요일.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게 되었다.


양복을 입을 일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짙은 남색 양복 한 벌, 두꺼운 회갈색 양복 한 벌이 전부.


구두는 결혼식 때 신었던 길쭉하고 불편한 검은 구두 한 켤레, 생도 때 샀던 발 편한 갈색 구두 한 켤레가 전부다.

뭐, 이런 식의 구두였다.

이번 결혼식 사회에서는 남색 양복과 갈색 구두를 챙겨갔다. 입고 가면 운전하면서 다 구겨질까, 고이 챙겨가 결혼식장 주차장에서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으응?"


뭔지 알 수 없는 약간 이상하고 기우뚱 한 느낌이 발바닥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정확히 예식장에 들어선 지 세 걸음만에 오른쪽 구두의 굽과 밑창이 다 삭아서 초코칩 쿠키처럼 바스러졌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내가 걸어온 3~4미터의 하얀색 대리석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흡사 전술훈련 간에 적의 예상 못한 기습공격을 받은 것 같은 충격이 머리를 한 대 치고 갔다. 당장에 수습을 해야 하는데, 그 자잘한 부스러기들을 다 주어 모을 수 없었다.


급한 대로 굽과 큰 부스러기 몇 개만 주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숨을 돌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13년도 더 된 구두의 밑창이 정말 삭을 대로 삭아서 바스러져 있었고, 왼쪽 밑창도 떨어지지만 않았지 똑같은 상황이었다.


옵션은 많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결단은 즉각 이루어졌다. 아예 굽과 밑창을 떼고 더 이상 부스러기가 식장에 흩뿌려지지 않도록 가방에 챙겨 다니는 칫솔로 밑창을 긁어버렸다.


인포데스크와 몇몇 안내직원에게 가서 근처 구두방을 물었으나, "없다", "모른다"식의 답변을 듣고는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이대로 식을 진행한다. 이상!"이라며 좌뇌가 쪽팔려하고 있는 우뇌에게 지시를 내렸고, 우뇌는 고개를 숙였다.


뒷굽이 없으니 앞코가 들려 숲 속의 요정 같은 신발이 되어버렸고, 안 그래도 작은 키가 더 부각되었다.


무사히 사회를 마치고 사진 찍을 시간, 부끄러운 우뇌의 지시로 멀찌감치 자리를 잡은 나를 신랑이 바로 옆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5분여간 나는 굽이 있는 것 같이 까치발을 들고 마지막을 장식했다. 휴-


그리곤 집에 오는데 그 원망스러운 갈색 구두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일명 [또각 펄럭 사건]


때는 2007? 8? 년 즈음. 시 생도 품위유지비 27만 원 중 13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산 그 '갈색 구두'에, 또 거금 8만 원을 들여 산 통 넓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교회에 성가대 친구들을 만나러 올림픽공원 옆 카페로 향했다.


거금을 투입한 청바지와 구두! 나름에는 함껏 멋을 부리고 간 자리였다. 아.


내가 만난 친구들은 모두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감각 좋은 서울시 여성들이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외쳤다.


"오빠 옷이 그게 뭐야! 퐈하하하! 또각 펄럭이네"


부끄러움은 구두의 몫도 청바지의 몫도 아닌,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는 그렇게 교회 친구들 사이에서 [또각 펄럭]이 되었고, 이제 좀 잊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작년에 그 친구들 중 한 명의 결혼식에 갔을 때도 [또각 펄럭]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아, 지금보니 조합..참 별로네


"빌어먹을 패션 센스!"


직업은 군인인데, 패션은 테러리스트라니 참담한 심정이다. 사실 이게 멋을 부려봤어야 부리는 것이고, 외모에 관심이 있었어야 가꿀 줄 아는데 너무 나를 숲 속에 고사목처럼 방치하고 사는 것 같기는 하다.


남자는 시계, 지갑, 구두, 벨트가 그렇게 중요하다고들 하던데 말이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동창들을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은 당장에 서로의 차를 비교하고, 차고 나온 시계를 자랑하고 지갑과 벨트를 과시했다.

요즘은 이렇게 사진을 찍어 올리는 '시갑샷'을 자랑하더라고

내 차는 스파크요, 신발은 운동화요, 지갑은 카드지갑이었다.


심지어는 올해 3월에 아내가 좋은 '벨트'를 생일선물로 해주기 전까지는, 몇 해 전 부모님 집에 찾아뵈면서 과일을 사 가기 위해 아파트 옆에 동네 마트 계산대 옆에서 팔던 5000원짜리 인조가죽 벨트를 차고 다녔었다.


"이건 좀 심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뭐 자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5000원짜리 벨트 치고 내구성도 괜찮아서 몇 년간 장롱에 넣어두고 이따금씩 사용하곤 했었다.


이건 검소함도 아니고 객기도 아니고 '좋은 걸 사달라!'는 반항의 의미도 아니다. 그저 패션에 관심도, 센스도 없는 것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명제를 마음에 새기고 본업에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래도 이제는 좀 격을 갖춰서 입고 다녀야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후배들이 진급선물로 사준 '신세대 느낌 나는 츄리닝'도 입어보고 하면서 '아, 얼굴이 안되면 옷이라고 좋게 입어야 좀 낫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냥 비가 오는 날, 당직을 서고 있는데 후배가 멀끔하게 차려입고 '갈색 구두'를 신고 포마드 크림으로 머리를 쫘-악 바르고 와서는 맥도날드를 사다 주고 가는데. 그 구두를 보고 생각이 들었다.

"아오, 갈색 구두. 또각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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