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다. 나 만큼 아이들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가 없다. 중요한 훈련이나 과업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코로나 사태 이후 15시에 퇴근하는 '육아시간'을 써 가며 퇴근해서 해 지기 전까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텃밭에 데리고 가 온갖 풀이며 나무며 곤충이며 동물들 이름을 설명하고, 뒷 산에 오르고,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시골마을을 돌며 개와 고양이들, 닭과 송아지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왕왕 안부를 묻는다.
집에 있을 때는 밥도 먹이고 응가도 닦이고 목욕도 시키고 옷도 입히고 머리도 빗어준다. 장난감도 같이 치우고 책도 매일 십 수권씩(어린이 성경은 무려 100여 쪽씩) 읽어준다.
전에 여러 편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저런 모습만 본다면 나는 '좋은 아빠'이다.
하지만 오늘은 고백할 정말 '못난 모습'이 있다.
나는 마음속에 불덩어리를 가지고 살고 있다. 아내를 만나고서는 그래도 많이 조절이 가능한 불이지만, 여전히 불씨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작은 불씨는 산소나 나무나 기름이 더해지는 순간 화염으로 폭발하는데, 문제는 대상을 가지리 않는다는 점이다.
어제저녁 집안일을 마치고 아내와 차를 한 잔 마시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부린 성질에 대해 또 후회를 했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동시에 주눅 들어 버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겹쳤다. 마음이 무겁고 먹먹했다.
분명 첫째 아이 키울 때는 '나도 아빠가 처음이라 그런 거야'라며 합리화도 했는데, 이제는 아이도 둘이고 벌써 몇 년이 지난 터라 더 이상 변명거리도 없다.
그냥 내 성질머리가 나쁘고 더러운 것. 그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잘 놀아주는 것보다 차라리 안 놀아주고 화도 안 내는 게 낫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치수'를 잘해야 하는데, 자식농사에서는 '치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식들을 어른의 기준에 놓고 생각을 하고, 충분히 인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그 '불'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식농사에 거름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작물은 모두 타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고 포장하고 글로써 선전해봤자, 결국에 아이들에게 뿜어내는 그 화를 감출 수 없었다. 언젠간 아이들의 어떤 모습에선가 스며 나올 모습이었다. 후회가 막급했다.
그래서 반성했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면, 언제나처럼 지금부터 진로를 수정하면 될 터였다. 나는 정말 그래야 한다.
나는 결심했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훈육의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미숙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전문적이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기로 다짐한다.
몇 가지 책들과 연구자료들을 공부하고, 지금의 훈육에 접목시키거나 개선할 사항들을 찾아낼 것이고, 온전해질 것이다. 특기를 살려 꾸준하고 밀도 있게 밀어붙여 결국엔 '좋은 아빠'가 될 것이고, '행복하고 지혜로운 자녀'로 키워 낼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쁜 아빠'에서 오늘부로 벗어 난다.
소리 지르거나 어른 기준에서 생각하지 않으면서 인내할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다. 이렇게 '좋은 아빠'로 첫걸음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