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장모님께서 직접 오셨다.
아내는 심한 입덧으로 누웠고, 집은 엉망이었다. 아이들은 나와 뒷산으로 산책 갔다 돌아와 더 놀아달라며 칭얼거렸다. 나는 기력이 다해, 쓰러진 아내 옆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장모님은 얼른 들어가서 좀 자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일요일 대낮인데 들어가서 쉬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애들하고 놀아주는 시간도 많이 줄었는데 애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아이들과 블록놀이를 이어갔다.
하지만 밀린 피로가 옆구리를 쿡쿡 지르고 눈꺼풀을 잡아 내렸다. 침대로 가려 일어선 내 양쪽 다리에 아들놈들 하나씩 붙어서 놔주지 않아 실랑이를 좀 했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3시, 나는 그토록 꿈꾸던 [낮잠]을 자게 되었다.
잠귀가 예민 한터라 당직근무를 서고 와서도 아이들이 떠들면 잠을 못 자 이어 플러그를 하곤 했었는데,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는 것처럼 피로가 수면제였다. 그대로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는데 깨 보니 이미 해가 지고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장모님께서 해주신 밥을 먹었고(1안심), 아이들은 여전히 즐겁게 장인어른과 놀고 있었고(2안심), 냉장고에서 무한 대기 중이던 묵은 식재료들은 몇몇 음식들로 변신했고(3안심), 작은방에 쌓여있던 빨래들은 모두 개켜져 있었다(4안심)
그리고 생각보다 오래 자 머쓱한 내 앞에 장모님 표 밥상이 차려졌다.(1감동) 그리고 내가 끓인 허접한 밥/국 단품 메뉴가 아닌 오랜만에 먹는 밥상의 맛에 눈이 '뿅' 떠졌다.(2감동) 무엇보다 나 좀 쉬라고 주말 반납하고 먼길 오셔서 살림이며 육아며 도맡아 해 주신 장인 장모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3~100 감동)
간신히 전선을 사수하고 있었는데, 미군 증원병력이 와서 순식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기분이었다.(아-!)
연일 계속되는 훈련과 육아, 가사로 [휴식]이 없었던 나에게 정말 가뭄의 단비 같은 휴일이 되었다. 비록 월요일에 출근하면 또다시 만만치 않은 업무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쉼표를 하나 찍고 넘어간다는 게 갖는 의미는 크다.
언제나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주시는 장인 장모님의 또 한 번의 도움을 보며 첫 번째는 감사함을 느꼈고, 두 번째는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준돌이 들이 결혼도 하고 애들도 낳아서 버거워하고 있으면, 내가 일요일에 준돌이 집에 가서 빨래를 개켜줄 수 있을까. 글쎄.
"야, 알아서 해- 아빠는 낚시 간다 ㅋㅋㅋ"
이렇게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