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남은 음식으로 살찌기

핑계 없는 지방 없다

by 아빠 민구



힘들고 슬프더라도, 혹은 아무리 행복할지라도 매일마다 하루 세 번 찾아오는 그 고민.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

도대체 오늘은 무엇을 요리할 것인가.


순무를 사놓았는데, 순무김치는 어떻게 만드는가. 당귀는 사놓았는데 당귀로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 이사 가기 전 식재료를 소진해야 하는데, 냉동실에 있는 꽁꽁 언 재료들은 언제 사용할까.


잠자리에 누우면 머릿속에서 냉장고 속 재료들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본다. 천장에 빔프로젝터라도 켠 듯 상상의 요리 채널이 펼쳐지고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그런 고민으로 차려내는 아침밥상.


오늘 아침에는 바지락 감자탕 베이스의 수제비와 야채 계란 전을 만들었다. 아내는 빼꼼 나와 바지락 감자 수제비를 반 그릇 떠서 맛을 본다.


"어우- 비려, 여보 바지락이 왜 이렇게 질기고 비리지?"


내 마음은 순식간에 장마와 같이 어둡고 습하고 무거워진다. 어떻게든 수제비를 살려보려 후추도, 소금도 넣어보지만 끝내. 상상했던 시원-한 국물 맛을 내진 못했다.




이런 식으로 실패한 음식들은 모두 내 차지다. 실패한 음식과 더불어 아이들이 남긴 밥이며 반찬, 몇 입 베어 물어 놓은 사과, 아침에 까서 반만 먹고 굴러다니는 바나나며 한쪽이 무른 귤까지. 모두 다 내가 처리한다.


그렇게 먹는 음식의 칼로리가 꽤 높은지 체중이 늘었다. 아내의 입덧이 시작되며 부엌일을 전담한 지 7주 만의 일이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비대해져서 참 꼴 보기 싫어졌다.



아내는 제멋대로 뻗친 눈썹 정리하라며, 삐져나온 코털 정리하라며, 피부가 건조하니 팩 좀 하라며 날 타박하지만 집안일은 왜 해도 해도 끝이 없는지! 나를 돌볼 시간을 반영하기란 참 어렵기만 하다.


나도! 내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 아니다. 나도! 부대에서 한 10km쯤 뛰고 와서 웨이트도 하고, 탁구도 하고, 풋살도 하고, 피부관리도 하고!! 카페 가서 책도 한 권 보고, 눈썹 문신 리터치도 받고!! 그러고 싶다.


하지만 밀려드는 바닷물을 양수기로 퍼올리듯, 휴동없이 계속되는 양수기의 발악에도 바닷물이 줄어들지 않듯, 집안일이. 그리고 몇 시간마다 돌아오는 상차림과 설거지가 나를 잠식한다.



예전엔 엄마가 살이 찌고 머리카락이 부쉐쉐하고 하는 것들을 '자기 꾸미기에 관심이 없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비슷하게나마 그 입장이 되어보니 실제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꾸미고 차리고 가꾸기가 말이다.


가끔 주변에 화자 되는 "어머 저 엄마는 애 둘을 키우면서도 저렇게 잘 꾸미고 다녀~ 집도 엄청 잘해놨더라고~"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부대에서 하는 업무마다 승승장구하고, 진급에 표창에 리더십에 인성과 인맥까지 두루 갖춘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과 '동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일을 잘하고 자기 자신까지 잘 가꾸는 것은 머리도 좋아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남편과 다른 식구들까지 좀 거들어야 가능한.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말이 장황했는데, 요즘 살찌고 피부 건조하고 눈썹 뻗치고 하는 내 모습에서 약간의 우울함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내가 살찌는 이유를 좀 찾고 싶어서 무작정 제목을 잡고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도 좀 쓰고 나니 한 바탕 크게 울고 나서 마음이 개운한 것처럼 풀리는 게 좀 있다.


아. 이놈의 옆구리살.

핑계 없는 지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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