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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an 27. 2021

비틀비틀 인생살이



중고등학교 시절과 재수할 때는 오직 '육사'에 가겠다는 목표뿐이었다. 배고프고 추워도 상관없었다. 마음속 화로에서 목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14년 전 1월 22일에 육사에 입학했다. 수년간의 목표가 달성되었다.


목표가 달성되자 방향이 상실되었다. 1학년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엄청난 학습량도, 가혹한 체력단련도,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는 단체생활도 아니었다. 목표의 상실이었다.


급히, 목표가 재설정되어야 했다.


1년 방황 끝에 목표를 다시 잡았다. 졸업이었다. 그저 이 힘들고 긴- 생도생활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졸업과 동시에 임관을 하면 또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다.


그렇게, 2011년 2월 25일 졸업 및 임관을 했다. 장교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해서, 10년을 준비해 소위가 되고, 그렇게 만난 35명의 소대원들에게 모든 열정이 쏟아냈다.


하지만 나의 군생활은 내가 생각한 군생활과는 같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높고 두꺼웠다. 다시, 목표의 재설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중위가, 대위가, 소령이 되었고- 남편이, 아빠가 되었다. 언제나 내가 계획했던 목표들은 달성되었거나 수정되어야 했다.



직선으로 뻥-뚫린 것처럼 보이는 도로에서조차 핸들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내 삶 역시 끊임없이 좌로-우로-좌로-우로 비틀비틀거리며 흘러왔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목표가 너무 높아서 도달하기 어려웠을 때가 아니라, 목표가 없어졌을 때였다. 목표는 손에 닿을 듯 아른거렸다가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기도- 환상처럼 모습을 바꿔버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 화로에서는 불씨가 꺼질까- 걱정하며 석탄처럼 한 삽 떠서 던져 넣을 '목표'를 갈망했다.


코로나 사태라는 복병으로 인해, 몇 년을 준비했었던 작년-재작년의 목표는 표류하고 좌초되는 것처럼 보이던 요즘이다. 망망대해 같은 막막한 군생활이 비틀비틀 이어졌다.


언제나처럼 아내는 그런 나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이번에도 역시 아내가 불을 밝혔다. 며칠 전 아내는 우리의 새로운 비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구체적 계획은 또 세워봐야겠지만, 한쪽 문을 열어준 것 만으로 또 한 번의 심기일전이 되었다. 다시 한번 목표에 집중하고 무언가 성취해야 할 긴 여정의 시작점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아내를 잘 만나야 한다는데, 나의 탐조등이 되어 앞길을 비춰주는 아내에게 감사가 피어올랐다. 아이들 재워놓고, 저녁마다 마주 앉아 같이 살아나가고 싶은 미래에 대해 구상해야겠다.



다시 키를 잡고 바람과 해류에 올라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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