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유부남으로서) 내 첫사랑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게 있었나-? 내 최고의 사랑이자 내 삶의 마지막 사랑은 아내다.
그리고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정말 마음이 저릿했고 사랑스러웠다. 태어난 직후에 눈을 마주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첫째는 나의 영원한 첫사랑이다.
그리고 첫째의 사랑 독식은 21개월 간 지속되었다. 항상 업고 다녔고, 하루에 수십-수백 곡의 노래를 불러줬었다. 나와 아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쏟아주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났다. 연년생 동생은 엄마의 사랑을 마구 흡수했다. 붙임성도 더 많고 애교도 있어서 그런지 만나는 누구든 둘째를 더 귀여워했다.
둘은 그렇게 4년째 사랑을 나눠서 가지고 있다. 장난감도 나눠야 하고 같은 이불을 덮어야 한다. 둘 중에 누구든 자다가 깨 엄마에게 쫄쫄 기어들어와서 자면, 다른 하나도 이내 잠이 깨고 엄마에게 기어 온다.그들의 사전에 더 이상 [혼자만]이라는 것은 없다.
둘 다 하늘땅만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도로, 아내는 더 어리고 애교 있는 둘째에게 더 많은 애정표현을 했다. 표현이 편중된 것은 옆에 있는 내가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늘 첫째를 보았다. 뭔가 애매하고 실망한 것 같은 표정 말이다. 첫째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첫째를 더 챙기고 둘째에게는 더 엄하게 대했다. 그렇게 해서 첫째의 기를 세워주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첫째는 가지고 있던 100%의 사랑을 '빼앗겼다'라고 느낄 수 있었고, 아직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조금 더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둘째는 틈만 나면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 아기들 나왔어?"
엄마 배가 불러오는 것이 눈에 띄는지 점점 물어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알게 모르게 둘째가 받는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둘째가 이야기했다.
"나 아기들 태어나는 거 싫어! 아기들 던져버릴 거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기도 했지만, 그만큼 둘째가 받는 스트레스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또 지금의 애정과 관심에서 반을 나눠야 한다. 특히 첫째 아이는 처음엔 독식하던 사랑을 지금은 반으로 나누고, 얼마 뒤엔 반의 반으로 나눠야 한다. 둘째는 이제껏 혼자만 가져본 적 없는 사랑을 아직 일면식도 없는 동생들에게 또 나눠야 한다. 동생들이 쌍둥이라 더 가혹하다.
그렇게 첫째 아이는 가진 것들을 뺏기는 데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둘째 아이는 '충분함'에 대한 경험의 부재라는 상황에 놓였다.
이것이 '둘째가 받는 스트레스'라는 것의 근본이 되었다. 둘째는 무엇을 온전히 혼자서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니 평상시에도 형에게 떼쓰고 고집부리고 욕심부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첫째는 잠시나마 '가져 봤으니까' 양보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둘째는 '자기만의 것'이라고는 애초에 없었을뿐더러- 옷이나 신발도 항상 물려받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드니- 지금까지 둘째의 고집과 욕심에 대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둘째는 뜬금없이 자기에게 맞지도 않는 형의 옷이나 신발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며 떼를 썼고 먹을 것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종종 자기 몫 이상의 욕심을 부렸다.
이런 상황을 먼저 인식한 아내가 말했다. 셋째-넷째가 태어나기 전에 둘째만 온전히 관심과 돌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항상 첫째만 안쓰러워했었는데, 이젠 첫째 둘째가 안쓰러워졌다.
사랑의 파이를 키우는 것과는 별개로, 사랑이 표현되는 데에는 어쩔 수 없는 물리적 제약을 받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쪼개고 관리해서 네 아이들을 사랑해 줄 것인가. 네 아이 모두 사랑에 대한 결핍 없이 자랄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벌써 둘이나 키워봤으니- 나름대로 육아 고수지!"하고 아내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걱정은 새로웠다. 분명 삶의 현장에서 치이고,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보면 나도 지칠 텐데-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실제로 첫째를 키울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미숙하고 부족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경험적으로는 충족되었으나 가용 자원 측면에서 앞날이 걱정된다고 해야 할까.
사랑의 총량이라는 것이 있을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한계가 있을까. 사랑은 개별적인 것일까 아니면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할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랑이 더해지고 곱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고민이 익어간다. 이제 새 식구를 맞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리고 꼼지락 거리며 존재감을 표하고 있다.
늘어난 식구가 사랑의 총량을 늘릴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마 우리 집은 사랑과 행복이 넘쳐흐르는 곳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사실 답도 없다)
여하튼 첫째, 둘째 셋-넷째 모두 사랑으로 잘 길러야 할 텐데. 그러면서 아내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마음속에서 큰 솥에다 사랑을 마구 끓여 다섯의 그릇에 따듯한 사랑을 한 국자씩 한 국자씩 담아줄 생각을 하니- 뭔가 행복하면서 걱정된다. 걱정은 보통 불필요하니 우선은 행복만 생각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