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퇴사도 한 발 늦은 유행

이민도 한 발 늦었지

by 아빠 민구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주말이라 여유를 좀 부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며칠 전 쓴 암호화폐 관련된 글의 조회수가 치솟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안녕을 유지한 상태에서 글이나 좀 써보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이 평화롭게 열렸다.


노트북의 윈도우 패스워드는 '독일'이다. 독일을 가겠다는 일념으로 컴퓨터 패스워드를 '독일'로 설정해 놓은 게 한 이년 전 일인 것 같은데, 여전히 나의 패스워드는 '독일'이었다.


독일에 대한 이민을 꿈꾸던 것은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였다. 더 나은 자연환경과 더 나은 교육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당연시되는 야근이나 주말출근도, 휴가 쓰는데 눈치 보는 것도 싫었다. 호주-뉴질랜드-캐나다-미국 등을 두루 고려한 끝에 독일로의 이민을 결정했었다.


당시 - 코로나 이전 - 에는 '퇴사'가 유행이었다.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 훌훌 털고 떠나거나, 뭐가 특별히 없어도 사직서 던지고 세상 끝 어디론가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터넷에 보면 '퇴사한다'라는 내용을 글들이 심심치 않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부수입 000을 만들고 퇴사를 했다"는 둥, "부동산으로 000억 만들고 퇴사를 했다"는 둥, "비트코인으로 000억을 벌고 퇴사했다"는 둥- 다들 어떻게 이렇게 수완이 좋은지, 나 빼고는 다들 퇴사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퇴사는 하나의 유행이 되어 뭇 직장인들의 코에 바람을 넣었다. 다만, 군인들이야 산속에 모여 살고 있으며, 그래도 나름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에 종사하기 때문에 유행에 좀 둔감한 편이었다. 그중에서 특별한 무기도, 특별한 재산도 없이 퇴사를 하려고 하니 골치가 아팠다.


작년 초, 다행히 독일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계약서까지 쓰며 "아, 역시 두드리면 열리는구나!"라는 민구스러운 기회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계약서까지 썼으니, 전역지원서만 내놓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2월- 3월- 뭐 이때는 코로나가 뭐 그렇게 나의 삶을 좌지우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티비에서는 전 세계가 역병에 휩쓸리고 있다는 뉴스를 끊임없이 송출했다.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일행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쌍둥이가 생겼다.


쌍둥이들을 데리고 역병이 창궐한 타국에 들어가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사람이야 어디든 살겠지만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역지원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와 전역지원서 모두 나의 서랍에 모셔두고, 군생활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작년 8월이었으면 전역 후 용인에 있는 본사에서 연수를, 올해 3월이었으면 독일에 있는 회사에 가서 정착을 시작했을 터였지만, 나는 여기 대전에 머무르고 있다. 해지했던 청약통장을 다시 가입하고, 가사노동을 줄이기 위한 가전제품이며 아이들을 위한 침대며 하는 세간살이들을 늘인다. 독일어니 영어니 하는 공부들은 손을 놓은 지 몇 달 된 것 같다.


쌍둥이들은 이제 오늘내일- 하고 있고, 야근할 거리는 불 보듯 뻔한데. 오랜만에 열어보는 노트북 비밀번호는 여전히 '독일'이다 보니, 참 주말을 뒤덮은 비구름 마냥 먹-먹-한 느낌이다. 계속 군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잘한 것인지 - 지금으로 봐서는 잘 된 일인데 - 아니면 장기적으로 봐서는 좋은 기회를 날린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사실, 수십 년이 지난다고 할지라도 '만약에'라며 가지 않은 길을 돌이켜본다고 할지라도 딱히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퇴사 유행도 한 발 늦은 시기에,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여전히 코로나'시대에, 돌아보는 것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 내 앞에 놓인 새로운 선택지들을 잘 선별해서 독일도 대전도 아닌 어딘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노트북 패스워드는 다음 여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독일'로 해 놓을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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