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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를 맡아줄게

yours 아니고 four

by 아빠 민구


어젯밤도 하얗게 불태웠고,

정신은 잿더미가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 너덜너덜- 하다

그리고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잘까. 쓸까. 쓰자. 그래.

자면 잊히지만, 쓰면 뭐라도 남으니까.




아이 하나를 키울 때 보다 둘 키울 때 두 배로 힘든 게 아니라 네 배로 힘들었던 것 같다. 부모가 하나 씩 아이를 맡으니, 결국 휴식과 회복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무척 무거웠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둘에 다시 둘을 더해 넷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예정일보다 일찍 나온 쌍둥이는 조금 작지만 건강하게 태어났고, 무사히 집으로 들어왔다. 몇 배로 힘든지 가늠은 안되지만 생각보다 난도가 높은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별 건 아닌데, 그 와중에 아내와 셋째 넷째를 하나씩 안고 젖을 먹이면서 가끔 '피식'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가령, 앞으로 손발톱을 자를 땐 둘러앉아서 한 한 시간 잡고 120개를 잘라야 한다-거나, 고깃집에 가면 도대체 몇 인분을 시켜야 하냐-하는 등의 농담에 아내와 나 둘만 키득키득 웃곤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손톱이나 고기 말고도 생각나는 것들이 좀 있을 것 같았다.



1 : 딸이 하나 생겼다.

둘도 필요 없고 열도 필요 없다. 그저 딸이 꼭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막내 아이로 딸이 태어났다. 검은색 초록색 파란색뿐이던 서랍장 속 옷들 사이사이로 분홍색과 빨간색 옷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태어나자마자 '공주'로 임명받은 소중한 녀석이 하나 들어오면서, 남초 우리 집에 성비 불균형이 다소 해소되었고, 엄마의 평생 친구가 생겼다.



2 : 뭐든지 두 개

출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엘 가니 출산 선물 꾸러미를 두 개 준다. 그러고 보니 쌍둥이가 우리 집에 가져다주는 것을 모든지 두 개다. 침대도 두 개, 카시트도 두 개, 양말도 이불도 모두 모두 두 개씩. 다만 성별이 다른 이란성쌍둥이라 모든 두 개의 물건은 모두 두 가지 색상이다.



3 : 수유 텀

태어난 지 4주 차, 아이들은 세 시간 간격으로 먹고-자고-싼다. 처음에는 동시에 딱딱 맞춰서 세 시간이 유지되면 편할 것 같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아내와 나의 손 발이 모두 묶여버리는 제한사항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유의미한 시간 차이를 만들어 아이들을 돌본다. 약간 어긋난 세 시간 바이오 리듬의 차이를 이용해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집안일과 첫째 둘째를 돌본다.


물론 밤낮없이 돌아가는 두 개의 3시간 사이클 더하기 기존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함께 돌아가기 때문에 루 종일 쉴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 매일매일이 시작은 되는데, 끝나지 않는 것만 같다.



4 : 목욕을 시켜도 네 명

내 몸뚱이 하나 씻기도 귀찮을 때가 있는데, 나는 안 씻을지언정 아이들은 씻여야 하니- 매일 같이 네 명의 아이를 목욕시켜야 한다. 목욕하자고 실랑이하고 씻기고, 말리고, 로션 바르고, 옷 입히고, 이 닦이기만 해도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갈 큰 과업이다. 다음 집엔 꼭 화장실이 두 개 있었으면 좋겠다. 아내랑 둘씩 나눠서 빨리 좀 끝내게.



5 : 24시간 동안 돌고 돌고 돌고

도대체 몇 번을 돌리는 건지. 하루 종일 빨래를 집어넣고, 꺼내서 건조기에 집어넣고. 식기세척기에 밥 먹은 설거지를 집어넣고 꺼내고, 식기세척기에 젖병을 넣고 꺼내고, 소독기에 넣고 꺼내고. 그나마 가전(♡)들이 도와줘서 망정이지, 시냇물에서 방망이질로 빨래를 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세탁기와 건조기와 식기세척기가 열 일한다 정말.


하루에 몇 번을 돌리나 세어봤더니, 24시간 동안 각각의 가전들은 기본적으로 다섯 번씩 운행이 되었다. 전기며 물이며- 인간이 살아가는데 소비가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없이 딩크로 살고 있는 동기는 전기요금이 1,400원 나온다고 하던데, 우리 집에선 100배도 넘는 전기요금이 나온다. 아이들을 키우는 건 대단히 생산적이면서도 소비적인 일인 것 같다.



6 : 가족관계 증명서

출생신고를 하고 일주일이 지나니 가족관계 증명서가 정리되었다. 내 이름 '민구' 아래로 아내와 아이 넷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여섯 식구가 늘어서 있으니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뭔가 모를 뿌듯함이 몰려왔다. 여섯 식구라니. 여섯 식구, 새 둥지에 새끼들이 입 벌리고 밥 달라고 지저귀는 모습이 떠올랐다.


열심히 벌어다 먹여 살려야겠다.



7 :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분명 하루가 끝난 것 같지는 않은데,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자정이 지나면 밤새는 시간 동안엔 아내와 번갈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본다. 쌍둥이들을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재운다. 사이사이 빨래를 개고, 젖병을 씻고,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내일을 생각해서 더는 무리라고 생각되는 때, 슬그머니 침실로 들어가서 아내에게 교대하자고 말한다. "여보, 애들 좀 맡아줘. 이젠 자야 할 것 같아"


두 시간을 자건, 세 시간을 자건 상관없이 7시엔 일어나야 한다. 7시부턴 부랴부랴 첫째 둘째를 깨워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 둘째가 어린이집 버스에 올라타면, 창문 너머로 손 하트를 발사하고 출근길에 오른다.


분명 하루가 끝난 적 없는 것 같은데, 어김없이 7시엔 하루가 시작하는 일상이 당분간은 반복될 것 같다.



8 : 깎아주세요

매주 깎아줘야할 손발이 각각 여덟개. 따라서 손톱이 40개, 발톱이 40개다. 손발톱 하나 당 세 번의 손톱깎이질을 한다고 해도 240번의 '딸깍'은 해야 마무리될 일이다. 아무리 못 잡아도 일주일에 한 시간은 사용해야 할 것 같다. 머리카락은 또 어떤가. 이주에 한 번씩 남자들이 머리를 자른다면, 못해도 만원씩 한 달이면 8만 원이다. 아무래도 남자 녀석들은 바리깡을 사서 대충 슥슥 밀어줘야 할 것 같다.



9 : 9인승 카니발 활용법

작년 말 스파크에서 카니발로 차를 바꿨다. 9인승 카니발에 4열 팝업 시트는 사실 트렁크 자리라 접어두고, 나머지 2, 3열 네 자리에 카시트가 설치되었다. 트렁크엔 거대한 쌍둥이 유모차가 들어가니 꽉 차 버렸다. 카니발을 100% 활용하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더군다나 이젠 합법적으로 버스전용차선을 탈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10 : 10점 만점에 10점.

나 스스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자녀 넷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물론 피곤과 경제적 궁핍은 피할 수 없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써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병행되었다. 충분히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고도 치고 난리도 치면서 바람 잘날 없겠지만, 언제든 10점 만점에 10점짜리 만족과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 : 기저귀로 옷을 만들어줄까, 산을 쌓아줄까

적게 잡아 아이들이 하루에 쓰는 기저귀는 20개 정도 된다. 기저귀는 하루에 20개, 한 달이면 600개를 사용할 예정이다. 사는 것도 문제고 버리는 것도 문제다. 다행히 '저소득층 기저귀 지원사업'에 대상자이기 때문에 아이당 6만 2천 원의 기저귀 바우처가 나온다. 기저귀 쓰레기는 한 이틀 모으면 20리터 봉투에 묵직하게 꽉 차는 수준인 것 같다. 기저귀로 옷을 해 입고 산을 쌓을 수 있을 수준인 것 같다.



30-40 : 분주해지는 시간-여유로워지는 시간

서른 살부터 시작된 육아는 6년 차로 접어들었다. 첫째 아이가 만 5세가 되니 대화도 통하고 설득도 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며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 이 정도 되니, "아 이제 다 키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내 나이 서른다섯에 셋째 넷째를 얻었으니 분주하고 피곤한 30대의 4년 정도만 더 보내면 여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산전수전 다 겪고 참을 만큼 참거나 화낼 만큼 화내면서 맞이할 40대는 분명, 지금보다 더 성숙하고 다듬어져 있는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혹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딴딴한 내면으로 여유로운 삶의 문으로 들어설 그날을 생각하며.



50-100 : 50점짜리 아빠, 100점이 되기까지

나 역시 미성숙한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늘 부족한 모습을 노출한다. 특히 잔소리를 내거나 아이들을 성급하게 몰아붙이거나 화를 낼 때가 있다. 성격이 급하고 불 같고 특히 최근에는 항상 쫓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더욱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잘 놀아주는 아빠지만, 그러한 연유로 나는 스스로를 50점짜리 아빠라고 생각한다. 첫째 아이 때는 '처음 해보는 아빠'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젠 네 아이를 키우는 '나름 베테랑 아빠'로서 돌보는 것도 놀아주는 것도 돈 벌어오고 집안일하는 것도 또 그 어떤 무엇도 잘할 수 있는 100점짜리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아니, 노력 말고 이젠 정말 100점짜리가 되어야겠다. 언제까지고 50점짜리로 남아있을 핑곗거리도 다 떨어져 버린 상황이니까. 스스로 마주한 가장 큰 과업이다. 50점에서 100점으로.


늘어난 아이들과 늘어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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