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유난히 길고 힘들었다. 이대로 육아에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다. 사회생활하는 내가 이 정도인데, 아내는 오죽할까. 그래서 나는 나가자고 했다.
"여보, 대신 화안 낼 자신 있어?"
"아니, 없어"
나가서 고생하면 또 내가 승질부릴까봐 걱정한 아내가 물었고, 내 대답은 간결했다. 상상되는 시나리오 몇 가지가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가장 힘든 하루를 보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토요일이었다.
끝도 없이 집에만 박혀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기분전환을 위해 어딘가 나 갔다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작정 나가자고 했다. 하지만, 시동을 걸고 나니 막막했다. 빗줄기가 굵었고 시야가 흐렸다.
우리는 고민 끝에 근처에 있는 00 아웃렛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을 것 같았으나 별 다른 옵션은 없었다. 그냥 가서 바람만 쐬고 오자는 심정으로, 한 달이 안 된 쌍둥이를 차에 모셨다. 장대비를 뚫고 20분을 달려 아울렛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 넷이 모두 자고 있었다.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은 했으나, 넷 모두 잠들어 있으니 일단 막막했다. 그리고 차의 시동을 끄니 쌍둥이들이 깨서 울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좌석 사이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아내와 내가 쌍둥이들을 한 명씩 맡아 한 40분쯤 젖을 먹였다. 다리가 저리고 등에서 땀이 흘렀다.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두 녀석 모두 응가를 했다. 이란성임에도 불구하고 바이오리듬이 매우 유사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힘들게 만들어나가는 아이들의 노력에 혀를 내둘렀다. 쭈그리고 앉은 그 자세에서 묘기와도 같이 아이들 기저귀를 갈았다.
쌍둥이 유모차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쌍둥이들을 태웠다. 그 후, 첫째와 둘째를 깨웠다. 이미 주차장에 도착한지는 한 시간 이십 분이 지나고 있었다. 입술은 계속 마르고 한숨은 삐져나왔다.
간신히 아울렛 입구에서 체온을 잰 시간은 집에서 나온 지 거의 두 시간이 지날 때 즈음이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오랜만에 바깥에 나왔으니 뭐 맛있는 거라도 먹이고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사고 싶었지만 여건은 여의치 않았다. 급한 대로 아이들에게 아웃렛에 있는 회전목마를 태우고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아내는 가지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아울렛을 돌았을까.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문제는 쌍둥이들이 다시 젖을 먹을 시간이라는 것이다. 아직 자고 있는 쌍둥이들을 수유실로 데려가 꿈나라 수유를 했다. 첫째 둘째는 유튜브를 틀어줬다. 그 사이 쌍둥이 들은 응가를 또 했다. "너무 많이 가져온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8장의 기저귀를 모두 소진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저녁밥을 포기하고 '귀가'를 결정했다. 입구로 나오니 아까보다 더 굵은 빗줄기가 "야, 어때. 마지막 난관이다. 극복해봐라!"라며 신명 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기세에 굴하지 않고 차를 가져와 아이 넷을 카시트에 태우고 유모차를 실었다.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더불어 내 마음도 젖어있었다. 정말. 고생 사서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바쁘게 밥을 차리고 바쁘게 밥을 먹이고 바쁘게 네 아이를 목욕시키고 집 정리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니 12시가 되었다. 몸과 마음은 마치 혹한기훈련을 마친 것만 같았다. 예상 못한 시나리오는 없었지만 예상보다 힘들었다.
다만, 과정 중에 분노와 짜증이 한두 번쯤 터져 나올 줄 알았는데 무사히 넘겼다. 아내와 포옹을 하며 "이 정도면 첫 외출 치고 선방이지!"라며 서로를 격려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우리의 첫 외출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한 자신감이 꼬리뼈에서부터 올라와 조만간 캠핑도 하고 서울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첫째 키울 때, 애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낑낑거렸던 장면이 스치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육아 짬이 많이 차서 이제 넷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베테랑 다되었나 보다.
어찌 됐든 편하진 않았지만 지루하지 않은 토요일이었다. 자정께 하루가 끝났으면 좋으련만 밤새도록 갈아야 하는 기저귀와 먹여야 하는 젖병이 번호표를 뽑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밤새 사투를 하다 보면 분명 끝난 적은없는데 또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