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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철학은 필요할까

아니면 체력이 필요할까

by 아빠 민구
넷째와 셋째. 생후 5주차.


철학은 필요한가

육아에 철학은 필요할까. 전쟁 같은 육아에서는 철학보단 체력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쪽잠과 스트레스, 부담감에서 이겨내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먹고, 더 자면서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주말 간 육아와 가사에 탈탈 털리고 나서는 '철학'이 필요할 수 있겠다고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공부와 일과 사랑과 인생에 철학이 필요한데, 육아라고 철학이 없어왔던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철학은 사고의 근간이고, 사고는 행동의 기준이고, 행동이 그 사람의 삶을 만들어나간다. 육아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아이를 양육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순간, 별다른 철학이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일관되게 유지할 수 없었던 수많은 기억이 스쳐갔다. 일관되지 않은 부모의 모습이 아이들의 성장과 배움에 있어서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두말할 필요 없는 것일 텐데.


지금까지 날들은 철학에 기초한 사고와, 사고의 결과로 정립한 기준을 바탕으로 행동을 꾸려나가지 못했었다. 그저 힘들다는 이유로 잘 수 있을 때 자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혼내고, 감정과 본능에 기초해서 동물과도 같은 양육을 하지 않았나.


철학이 사고를 이끌고, 기준과 원칙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성숙한 인간이고 싶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한 마리의 돼지에 불과했었던 것 같다.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만 열심이고 기민했던 돼지 말이다.



노는 게 젤 좋아


이소은과 이규천 씨

문득, 예전에 영재 발굴단이라는 프로에 나왔던 가수 이소은과 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었다. 당시에는 단지 멋진 아버지-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는데 그분께서 했었던 몇 가지 말을 곱씹어보면서 그 바탕에 깔린 사고와 철학을 얼핏 엿볼 수 있었다.


딸들이 기억하는 부친 이규천 씨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잊어버려(forget about it)"라고 한다. 그래서 이소은 자매는 실수에도 좌절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늘 즐거운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실패는 축하받을 일", "너의 전부를 사랑하지, 잘할 때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들이 인상 깊었다.


저런 말들로 미뤄 본 이규천 씨의 자녀 훈육에 대한 철학을 유추해보았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아이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강요하려 하지 않고, 넘어지는 법을 통해 자신을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도 되거나 비슷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철학은 아니지만, 그 생각의 틀로 비춰 본 나와 첫째, 둘째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무한한 미안함과 속 쓰림이 밀려왔다.



인생사 돌고 돌고 돌고- 를 배우는 중



착각 속에 사는 좋은 아빠

지금까지 잘 놀아준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며 착각 속에 살아왔던 날들을 한 땀 한 땀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참 부족하고, 그 부족한 점도 인지하지 못한 미련한 아빠였던 것이다.


철학이 없는 인간, 철학이 없는 기업, 철학이 없는 일과 사랑, 철학이 없는 배움과 가르침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성숙한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철학'이었구나- 라는 한 두 박자 늦은 후회를 머금는다.



숲속에서 제일 신나하는 아이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의사, 변호사로 키워내기 위함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반짝반짝 밝게 빛나고 예의 바르고 행복한 사람으로 길러내야 할 텐데. 그렇게 자랄 수 있도록 육아에 대한 나의 가치관과 철학부터 정립하는 시간을 갖어야겠다.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 것이며, 어떤 가정을 꾸리고 어떻게 아이들을 기를 것인가.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키워야 하는데.


섣부르게 귀농하는 철부지가 아니라 제대로 된 철학과 계획을 가지고 자식농사를 지어나가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하면서 살아가야겠다. 그것이 실패를 거듭할지언정 나의 지향점이고 방향성이다. 작은 욕심으로- 나중에 70이나 넘어서. 자녀들에 대한 바른 훈육과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줄 수 있는 [이 시대의 성공한 아버지]가 되면 좋겠다-는 꿈도. 꿔 본다.



물론 철학만큼 체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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