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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Oct 07. 2021

군인아파트의 이사철

그리고 이사철의 군인가족들



9월 말이 되자 어수선했다.


철컹청컹, 위잉- 쿵. 새벽부터 요란한 사다리차 소리에 잠을 깨는 날이 많았다. 창밖을 보면  앞동도, 뒷동도, 우리 동에도 사다리차가 짐을 내리고 있다. 새벽부터 서두르는 걸 보니 다음 부대를 먼 곳으로 발령받았나 보다. 강원도 산골짜기 일까, 남해안 어디일까.


군인들에게는 이사철이 있다. 각 분기별로 전속 명령이 일제히 발령되고, 군인들은 그 명에 의해 떠난다. 렇기 때문에 각 분기 말, 특히 12월 전후로 해서 이사가 려있다.


군인과 군인 가족들이 그렇겠지만, 이제 좀 익숙하고 정든 곳과 사람들을 떠나 또 새로운 곳으로 간다. 군인과 가족들에게 평생도록 익숙한 건 이삿짐 싸고 푸는 일뿐이리라.



요 며칠 시끄럽더니 다시 사다리차가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동마다 폐기 처리한 가구들이 쌓여있다. 자주 이사를 다니니 가구들이 남아나질 않는다. 혹은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며 버리고 갔을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떠났다. 친구들과 인사는 했는지, 왜 떠나는지 말은 해줬는지 모르겠다. 집에는 매번 바뀌는 유치원 가방과 단복이 하나 더 쌓였다.


같은 처지, 같은 생활패턴으로 금방 친해졌던 군인 아내들은 언제 또 만날지 약속하지 못하고 전국으로 흩어진다. 여자들 중 이사 날짜가 가장 나중으로 잡힌 언니는 다른 가족들을 다 떠나보내고 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종의 빈 둥지 증후군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앞집 사람들은 6개월을 살다 떠났는데, 깜빡했는지 택배 상자 하나가 며칠째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디로 갔으려나- 알아야 보내줄 텐데, 쌍둥이들이 태어나 한참 바쁜 시기에 이사를 와서 제대로 얼굴도 트지 못했다.



두 달 뒤면 나도 이곳을 떠난다. 일 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떠나며, 대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코로나도 그렇고 쌍둥이들이 태어난 것도 그렇고- 돌아다닐만한 여건은 아니었다.


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겨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든데, 이번 기회에 살쪄서 못 입는 옷들을 확- 버려버릴까 보다. 뱃살도 버리고 가면 좋을 텐데. 케케묵은 고집과 아집도 버리고 새집으로 가면 좋을 텐데.


군인 아파트도 고생이다. 그러니 이렇게 늙고 삭았나 싶다. 재개발 계획은 없다니까 조금 더 힘내자. 군인들이 나라 지키는 것처럼, 너도 무너지지 말고 군인들을 지켜주렴.


이사철이 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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