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아이들 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각 서열에 따른 성향은 집집마다 비슷하다는 것 같았다. 첫째는 첫째라서 첫째끼리 비슷하고, 둘째는 둘째라서 둘째들끼리 비슷한 공통의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 집 첫째 역시 항상 동생을 걱정하고 보호해준다. 동생이 때리면 맞아주고 장난감을 가지고 다투다가도 끝내는 양보 한다. 둘째 역시 둘째 역할에 충실하며 충분히 떼쓰고 징징거린다. 둘째라서 눈치도 빠르고 이 집에서 자기가 가장 돌봄 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안쓰럽게도 첫째는 벌써 사 년째 '형'이라는 역할에 대해 교육받아왔다. 그게 태어난 지 두 돌도 안되면서부터이다. 전부를 독차지하다가 반을 나누니 상실감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둘째도 처음부터 전부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 그 나름대로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다.
형만 한 아우 없다고, "네가 형이니까 동생 지켜주고 도와줘야 해"라는 말을 주구장창 듣고 자란 첫째 아이는 책임감이 몸에 배었고 나름 의젓한 모습도 익숙하다. 둘째는 천방지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다. 이제 그것도 끝인데 말이다.
쌍둥이가 태어났고, 각자에게 요구하는 역할 기대가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첫째에게는 더 큰 책임감이, 둘째에겐 없던 책임감이 요구되었다. 형이고 오빠니까 동생들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전부 가졌던 걸 한 번 뺏겨본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빼앗아보기만 했지 뺏겨보는 건 처음이다.
둘째는 독보적 입지에 위기가 찾아왔음을 눈치챘는지 더 보채고 징징거렸다. 그럴 나이가 지났는데 밥을 떠먹여 달라고 하질 않나, 발음도 더 뭉개서 말을 하지 않나.뺏기고 싶지 않은 막내 자리였다.
제일 안쓰러운 건 셋째다. 태어나면서부터 형이 둘 있었고, 태어난 지 56초 만에 오빠가 되었으니 말이다. 똑같이 배고파서, 혹은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울어도 막내에게 손이 먼저 가는 건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다 보니 4개월밖에 안된 쌍둥이들 중에서도 넷째는 울다 지쳐 잠들기도 하고, 소변을 봐도 잘 잘 참는다. 혼자서 놀기도 하고, 누가 마주 보고 말이라도 걸어주면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좋아한다.
네 아이를 가지면서, 더 많이 사랑해주고 쏟아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 부부가 가지고 있는 한계들로 인해 각 아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하루 종일 엄마품을 떠나려 하지 않는 넷째가 하루 종일 목소리 높여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다. 나 여기 있다고, 나 좀 안아 달라고 쉬지 않고 울어댄다. 그러니 첫째, 둘째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물리적인 부족이 부족으로 그치지 않는 건 아이들 상호 간에 작용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아이도 부모를 안아주고, 첫째가 둘째를 돌봐주고, 둘째는 셋째와 놀아주고, 넷째가 첫째에게 옹알이를 하기 때문에 부족으로 그치지 않는다. 네 아이는 곱셈이 되어 하나의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할 것도 없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열에 따라 정해지는 역할 기대에 의해 우리 모두는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니까.
다만 한 가지, 벌써 동생이 셋인 나의 첫 번째 아이가 너무 서운하지 않게 기를 살려주고 맏이로서의 책임감에 부합하는 권한과 권위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자랑스럽게 '내가 얘들 형이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빛나는 첫째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