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 민구 Oct 21. 2021

신체나이 마흔한 살

작년엔 서른 살



요 며칠 정신없이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 가을은 가고 겨울이 왔다. 아니, 여름에서 겨울로 곧장 가버린 느낌이 들었다. 여름도, 가을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보내버린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작년 건강검진 결과에서는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신체나이가 30살이었는데, 올해 신검 결과에서는 41살이 되어있었다. 각종 수치들은 실제 나이보다 5년 정도 젊었다가 일 년 사이에 5년 정도 늙어버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꽤 우울한 문제였다.


가족을 돌보느라 10년이 늙어버렸구나-


그러다 문득, 그럼 마흔 쯤 됐을 땐 지금 정도의 뱃살과 지금 정도의 간수치는 '적절한 수준'이겠거니- 생각하니 안심 섞인 웃음이 나왔다. 또, 이러다가는 신체에 비해 얼굴은 동안이겠구나-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는 웃음도 나왔다.


도무지 쉴틈 없이 돌아가는 매일 속에서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핑계가 아닌 핑계였다. 살을 좀 빼려는 몇몇 동료들이 '새벽 5시에 같이 뛰고 출근하자', '아침 6시에 테니스 나와라' 등등 말은 하지만, 다섯 시나- 여섯 시- 그즈음은 또 나에겐 그 나름대로 바쁜 시간이다.


매일매일이 그렇다고 엄살을 부리긴 그렇지만, 어제도 새벽 4시까지 집안일을 하다 누웠는데- 그때부터 셋째가 깨서 젖을 먹이고, 첫째가 악몽을 꿨다해서 진정시키고 그러다 보니 여섯 시였다. 잠을 자지 않고 테니스를 나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일곱 시부터는 아이들 등원 준비에 가장 정신없이 바쁠 때니까.


새벽녘 잠들기 전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아, 가을이 벌써 갔구나'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 날씨와 그 시간과 그 피로감을 가지고 아침 달리기나 테니스를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너무 추워서 나가기 귀찮아지는데, 마침 아이들 돌본다는 좋은 핑계가 있음에 한편으론 감사했다.


가을이 갔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가을은 내년에도 있으니까- 괜찮다며 끄덕인다. 다만, 지나간 가을을 못 즐긴 것보다 이제 온 겨울을 즐기지 못하진 않을까 고민하고 고민해야 한다. 첫눈이 내리면 셋째, 넷째 들쳐 메고 첫째 둘째 눈썰매 태우러 바로 뛰어나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마음의 전투준비태세가 아니라면 얼마 뒤 '벌써 겨울도 갔네-'라며 뒷북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41살의 신체나이가 조금 우울하긴 하지만, 뱃살이야 빼면 되고- 자기 전 맥주 한 캔도 끊으면 되고- 다시 날씬한 허리와 튼튼한 다리로 여기저기 다니며 즐겁게 지낼 여행 같은 삶의 2부를 준비하면 된다. 그 나중의 즐거움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고, 사실 더 중요한 건 실제 나이 서른다섯, 신체 나이 마흔 하나의 바쁘고 정신없는 지금의 삶을 즐기는 것이겠다. 못하다면 이 시간도 곧 지나 '벌써 서른다섯도 갔네-'라며 뒷북을 칠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중요한 순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