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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Oct 26. 2021

육아 : 감정과 육체의 노동집약형 활동

감정에너지 보존의 법칙



아이를 돌보는 일은 육체적 활동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근력을 먹고자라는, 혹은 젖병에 43도로 타서 잘 녹인 분유를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감정노동집약형 활동이다. 감정노동을 하는 다른 많은 직종의 사람들과 같이 부모들은 삶의 현장에서 지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의 에너지가 바닥까지 드러나는 순간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마지막 물 한 방울이 잔을 넘치게 하듯, 혹은 마른 가지에 불이 옮겨 붙듯. 일단 부모의 감정에너지가 바닥난다고 하면 사소한 그 어떤 조무래기 같은 일이라도 임계치 넘어간다.


아이가 어리거나 혹은 아프거나 혹은 예민해서 자주 깬다면, 그래서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는 날들이 누적된다면 더욱. 감정의 에너지는 자주 경고등을 울린다.


빨래, 식사를 포함한 집안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육체적 에너지까지 고갈되어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집에서 쉬면서 애 보는 게 그렇게 힘들어? 어린이집도 보낼 거 아냐"


집에서 쉬지도 않을뿐더러, 애 보는 건 힘이 드는 일이다. 어린이집을 보내면 시간은 좀 생기겠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새로운 걱정의 거리들이 생겨나며 잠시 집안에서의 걱정거리를 잊게 만들 뿐이다.


산후 우울이며 육아 우울증이며 하는 것들이 호르몬에 의해서 생긴다고- 혹은 사회 문화적으로 생긴다고- 훌륭하신 분들이 연구들을 많이 하셨겠지만 실제로 육아를 찐하게 해 보면 알 수 있다. 감정 에너지가 바닥나서 그런 것이니까.


아내는 어른과 하는 대화가 너무 고프다고 했다. 아이들이 말을 못 할 때는 언어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렵고, 아이들이 말을 하고 나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왜'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따라붙어서 어렵고, 아이들이 질문하지 않게 됐을 때에는 아이들의 고집과 자아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육아는. 그렇게 부모의 시간과 노력과 감정을 잘 비벼가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다. 힘들지만 무너지면 안 되는 것이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에너지가 떨어지고 건강이 나빠지고 우울해질 수 있지만, 열역학 법칙처럼 부모의 열과 성은 아이에게로 전달되어 보존되고 있다.


만일, 우울하고 지쳐있다면. 충분히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도 좋다.


아이와 하루 이틀 살고 끝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다. 시간과의 싸움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 번 제출하면 끝나는 레포트가 아니라 대를 물려가며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나 '폼페이 유적'을 발굴하는 것 같은 일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아이를 키우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아이를 만들겠지만  내일의 내가 미래의 아이를 채 다 완성하지 못하고 끝이 날 것이다. 다만, 그 에너지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며 전달되고 이어질 것이다.


하루는 유령처럼 걸어 다니는 엉덩이 살 오른 날 보며, 동료가 칭찬인 듯 비웃으며 말했다. "와- 민구 엉덩이 진짜 장난 아니다"


뛰는 것도 아니고 오래 걸은 것도 아니고 군장을 메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팔다리에 힘이 없었다. 운동을 하려고 해도 그럴만한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엉덩이는 커져만 갔고 남들이 보기에는 참 꼴사나운 모습이 되어있었나 보다.


자기 관리도 잘하고 이제 막 결혼해서 아이가 없는 친구가 보기에는, 애 키운다고 살찌고 힘 없이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이 보기에 거북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감정과 육체의 에너지들은 어딘가에 고스란히 보존되어있을 것이다. 회식한다고 취미 생활한다고 어디로 새지 않고 남김없이 아이들 어딘가 에로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적금 든다 생각하고 매일을 잘 모아가다 보면,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이건 그냥 적금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금맥을 찾아 땅을 파고들어가는 일과 같은 일 이라는 것을.


포기하려 했던 마지막 한 삽이 금맥에 닿게 되고 그 삽질이 멈추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렇게 매일 같이 캐어낸 금을 마음 속 금고에 쌓아놓고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있고 밝은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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