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안아주세요!!"라며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마땅히 갈 병원도 없었고, 병원에 안 가겠다는 걸 어르고 달래 근처 군 병원 응급실에 갔다. 군의관은 팔이 부러졌다고 진단했고, 성장판이 다쳤을 수도 있다고 하며 상급 의료기관에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우리는 그날 밤으로 짐을 싸서 처가로 또 한 번의 대이동을 했다. 분유 포트며 기저귀며 옷과 장난감까지. 최소로 챙긴다고 했는데 네 아이와 가방 일곱 개, 유모차가 차에 실렸다. 울고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 가며 밤길을 달렸고, 대전과 용인 사이 어디쯤에서 아이들은 잠들었다. 짐을 내리고 잠든 아이들을 옮기는 것도 한참이었다.
주말에 다친 터라 대학병원 진료예약은 못했다. 장인 장모님께서 2, 3, 4번 아이들을 맡아주셔서 우리는 날이 밝기도 전에 첫째 아이만 데리고 대학병원에 가 무작정 기다리기를 시작했다. 초진인 데다 비예약이라 대기시간은 어마어마했고, 큰 병원 특유의 우울하지만 활기찬 분위기에 아이는 주눅이 들었다.
다행히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성장판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나절도 넘게 지나 깁스를 한 팔을 이끌고 돌아왔다. 이제야 아내도 나도 한 시름 돌렸다며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양보의 방향이 바뀌었다.
지난 기간 동안 첫째 아이는 늘 양보를 강요받았다. 두 돌이 되기도 전에 동생이 태어났고, 엄마와 둘째가 조리원에 가있는 동안 엄마를 양보해야 했다. 본인이 어린이집에 갈 때에도 둘째는 엄마 품에 남아있었다.
독차지하던 장난감은 동생과 나누어야 했고, 보고 싶은 책이나 애니메이션이 있어도 순서를 번 가르거나 형이라는 이유로 양보해야 했다. 먹을 것도, 놀 것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나고부터는 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다. 부모가 돌봐줄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었고, 여섯 살 맏아들은 혼자서 목욕도, 용변처리도, 양치도하고 옷도 입는다. 둘째를 챙기고 장난감과 간식의 뒷정리를 하고 쌍둥이들과 놀아준다.
아직 보살핌 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고사리손으로 아기들 볼을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유치원 친구들은 그렇지 않을 텐데, 이 책임감 넘치고 철 이르게 의젓해진 아이는 그런 것들을 조용히 감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맏이의 스트레스는 확실하게 누적되고 있었나 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화장실에 다녀온 지 몇 초가 되지 않아 다시 화장실에 가기를 반복했다. 몇 분 사이에 열 번도 넘게 나오지도 않는 소변을 보러 갔다. 그렇게 하루에 수 십 번도 화장실 문턱을 넘었다. 방광염인가 했지만 병원에서는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라 했다.
팔이 부러진 아이는, 오랜만에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 손을 잡고 걸었다. 칭얼거리는 동생들도 없이 자신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아빠가 떠먹여 주었다. 더 이상 목마에서 내려오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 아빠는 쉬지 않고 아픈지, 불편한지, 배고픈지, 힘든지를 물었고 그동안 못했던 소담을 나누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랬다. 나는 둘째에게 형에게 양보해줄 것을 일렀고, 첫째를 우선해서 챙겨주었다. 물론 실시간으로 삐약삐약 거리는 쌍둥이들이 있지만 아내는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첫째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살폈다. 양보의 방향이 바뀌었고, 첫째의 시간이었다.
팔이 부러진 것이 속상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의 이런 대우가 그리웠던 것인지 요 며칠 첫째의 어리광이 늘었다. 이제는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평소 가지고 싶던 장난감을 사달라고 한다. 원래 이 나이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들인데, 이제야 마음 놓고 떼쓰는 첫째를 보니 마음이 안쓰러웠고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둘째도 형을 충분히 생각해주고 있고, 첫째의 부러진 팔도 잘 붙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첫째의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여러모로 한시름 놓았다.
이렇게 바뀐 양보의 방향을 보며, 앞으로는 첫째에게만 양보를 강요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도 어린아이이고 그에 맞는 배려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첫째의 책임감과 의젓함을 감사히 여기고 서운하지 않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