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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ug 18. 2022

우리 걷지




"우리 좀 걷지."


마주 보던 시선을 저 멀리 던지며 앞서 걷기 시작했다.

다정하던 말투 대신 사무적인 마침표가 말 끝을 정돈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았으나 말은 없었다.

둘 사이의 말은 없었으나 일은 많았다.


옆으로 보이는 서로의 모습에서 흰머리가 눈에 들어오고

눈가의 고랑 깊어 종종 흐르는 눈물이 지나기 수월했다


고랑에 고인 눈물을 마시고 자랐는지

8년 간 네 아이가 쑥쑥 자랐다


잠깐 쉬며 마주 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으나

타이밍을 놓친 것이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다


사무적인 마침표가 사나운 느낌표도 되었다가

낚싯바늘 같은 물음표도 되었다가 결국 한숨 섞인 쉼표도 되었다


그래도 잘 가고 있다고, 멀리 왔다고, 은 없다고

속으로 가래를 삼키며, 눈 질끈 감으며 걷고 걸었다


우리 뭐 하는 거예요? 묻는 아이들에게

우리 걷지, 말을 내어주었다


걸음에 꽃이 피고 쉼이 있으면 좋으련만

걸음에 밤이 오고 힘이 없으니 좋을 수가


하지만 곧 올 아침에는 걸음을 멈추자

우리 좀 쉬지, 말하며 다시 서로를 보


빛나는 열 두 개 눈동자가 앞이 아닌 서로를 향해

금방울 같은 위로를 전하고 누룽지 같은 생명을 나누


바로 저기 앞에 언덕 위에서 그러자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힘내


출처 : fre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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