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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Sep 02. 2022

집 나간 아빠, 전쟁하는 엄마

아빠가 훈련하면 엄마는 전쟁




출가인가, 가출인가.


어쨌든 또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 일요일은 미안한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엄숙한 분위기는 집안을 채운다. 경건한 마음으로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일주일치 짐을 싼다.


나는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집을 나선다. 직업이 군인인 나로서는 야근이야 안터라도 훈련을 뺄 순 없다. 훈련은 싱글이건 신혼부부건 아이 넷 아빠건 가려서 적용되지 않는다. 훈련은 죄가 없다.


하지만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아빠가 군인 건 죄가 있다.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나는 죄를 안고 책임을 뒤로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을 나섰다.

 

집에는 아내가 남았다. 아내와 아이 넷이 남았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하루  번 빨래와 세 번의 설거지, 세 번씩  이를 닦아줘야 하는 네 개의 입과, 한 두 번씩 대변을 처리해줘야 하는 네 개의 엉덩이, 밥과 간식, 등원과 하원, 재우기와 깨우기, 하루가 시작된 직후부터의 분주함과 모든 것이 끝난 뒤의 적적함이 남았다.


아내 홀로 감당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은 아내를 전쟁통으로 몰아넣는다. 한시가 급하고 또 한시가 분주하다. 그리하여, 내가 군인인데 전쟁은 아내가 한다. 내가 군인이라 살림도 아내가 한다. 내가 군인이라 모든 걸 아내 혼자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래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가혹할 것 같다. 입장을 바꿔놓으면 말이다. 내가 육아와 가사에 상대적으로 참여를 많이 하는 아빠이지만서도, 혼자 아이 넷을 보고 있노라면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진다. 정신이 없고 힘이 들고 분노가 치고 올랐다가 우울함이 순식간에 짓누르기도 한다.


아내가 내 퇴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250% 이해된다. 가끔, 아주 가끔 나 혼자 아이들을 보는 경우에 이미 충분히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손 많이 가는 아직 어린 쌍둥이들이 있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내에게 감사하고 또 존경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잘-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훈련을 출발하는 날 아침에 졸린 눈 부비며 나와서 새벽같이 나가는 나를 배웅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 웃는 사진을 짬짬이 보내주고, 전화하면 잘 있다고 답해주고, 돌아오면 무얼 먹고 싶냐고 언제나 물어봐주는 그녀의 넉넉하고 단단함이 이렇게 감사할 수 없다.


어쩌면 웬만한 (엄마+아빠)*1.3 정도는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결혼 전 5개월 간 연애했던 가녀린 그녀가 맞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훈련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이 감사한 마음을 어찌 흘려보낼 길이 없으니 또 이렇게 궁상맞게 브런치에다 졸린 눈 부비며 쓰고 있다. 내일 아침, 아내의 핸드폰에 브런치가 알림을 넣어놓고,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될까 하고 원격으로 애를 쓰고 있다.


아무튼 내가 훈련이면, 아내는 전쟁이다.

군인의 아내들에게는 어쩌면 남편과 같은 계급장을 혹은 하나 더 높은 계급장을 달아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들은 온 삶으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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