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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Nov 16. 2022

제2차 독립전쟁 : 쌍둥이 단유

내가 죽든, 니가 끊든


인간이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끊음으로 첫 번째 독립이 시작된다. 엄마와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분리되어 각각의 개체가 된다. 비로소 아기는 목소리를 내어 울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독립은 독립이지만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우는 것뿐  불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 있다.


'홀로 서다'라는 뜻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몇 번의 독립이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정신적 독립이나 경제적 자립 같은 경우는 나중 일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당장에 필요한 과정이 있다. 제2차 독립, 단유다.


아내의 경우에는 죽어도 모유를 먹이겠다는 굳은 심지를 가진 사람으로서, 첫째 때도 만 1년, 둘째 때도 만 1년 간의 완전 모유수유 경험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쌍둥이었으니까.


보통의 경우, 쌍둥이는 모유 수유가 쉽지 않다. 젖 양도 양이겠지만, 그보다는 엄마 혼자 감당해야 할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젖을 먹으면 분유를 먹는 아이들에 비해 잠도 적게 자고 자주 깬다. 쌍둥이의 경우에는 그 둘의 불규칙한 바이오리듬으로 인해 엄마가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나가기가 더 까다롭다.


뿐만 아니라 밤새도록 먹이고 재우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가 극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 막내들을 키우면서는 분유를 함께 먹이자는데 일정 부분 합의했다. 물론 아이들이 좀 큰 이후부터 말이다.


아내의 굳은 각오에 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나 역시도 정말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얕게 자는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서 재워가며 매일 밤을 보냈던 날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였다. 분유도 중간에 조금 먹이려 했으나, 모유 맛을 아는 아기들이 굳이 분유를 먹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한 술 더 떠서 쌍둥이라서 혼자 먹을 모유를 나눠 먹었으니 1년을 넘기고서도 더 먹이겠다고 했다. 안쓰러워서 젖을 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젖먹이 기간이 일 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첫째, 둘째 때 경험해 봐서 알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며칠 밤은 꼬박 울릴 수밖에 없었고, 부모로서도 그 우는소리를 듣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젖 냄새를 맡지 못하게 아빠인 내가 재워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한 단유. 제2차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첫날부터 양옆에서 목이 찢어져라 우는 쌍둥이들은 세 시간을 연속해서 울었고, 간신히 지쳐 잠들었다가도 깨서 또 울기를 반복했다. 나의 멘탈은 연두부처럼 녹아 바스러졌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목이 찢어져라 울던 넷째 아이가 목감기까지 걸려 체온이 40도를 오르내리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단유가 한 번이라도 중단되면 그다음에는 더 어렵다는 것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고통스러웠지만 약을 먹이고 컨디션을 잘 조절하면서 단유를 계속했다. 나도 정신 줄 바짝 당겨가며 죽기 살기로 버텼다. "내가 죽든, 니가 끊든!"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렇게 첫날에는 세 시간이 걸리던 것이, 다음 날에는 두 시간, 한 시간, 30분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내가 팔 벌려 양쪽으로 쌍둥이들에게 팔베개를 준비해 주면 이 녀석들이 곧장 기어 와서 내 품에 안겼다. 5분 컷이었다.


이로써 녀석들의 제2차 독립이 끝이 났다. 혹시나 해서 버리지 못하던 분유 병들은 모두 재활용품으로 분리배출되었고, 남은 분유들은 당근 마켓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드디어 통잠을 자게 되었고- 아내와 나도 일 년 반 만에 대여섯 시간을 이어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젖을 끊은 녀석들은 더 왕성하게 이것저것 먹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에서 낮잠도 수월하게 자게 시작했다. 엄마 껌딱지들이 이제는 세상을 향해 호기심을 내뻗기 시작했다. 독립이었다. 더 이상 엄마가 아니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깨달음이었다.


아내의 젖몸살과 나의 멘탈붕괴가 수반되었지만, 진일보하기 위한 성장통이었다. 일 년 넘게 엄마 젖을 물고 잠이 들던 녀석들이 이젠 내 품에서도 곤히 잔다. 한편, 엄마랑 자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첫째, 둘째 녀석들도 이제는 매일같이 엄마랑 시시덕거리다가 잠이 든다.


모든 것들이 비상운영체제에서 상시운영체제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것으로 제2차 독립전쟁이 종전되었다. 모두가 승자인 전쟁이었다. 다시 얼마간의 평화가 찾아왔고, 그다음 독립전쟁은 당분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자체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지난 17개월간의 사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네 아이를 모유로 키워낸 아내의 헌신에 다시 한번 박수와 경의를 보낸다. 정말 대단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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