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수많은 이사 중에는 반지하와 판자촌에서부터 해서 산골짜기와 바닷가, 사막에까지 다양한 지역과 환경에서 살아보았다.
하지만 마당이 있는 집은 처음이었다.
집주인으로부터 받은 마당 사진
전원주택에 딸린 너른 마당은 아니다. 아파트에 딸린 한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마당이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작년 말부터 통학거리가 괜찮은 집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학교에 바로 붙은 집을 찾게 되었다.
1월 초 급하게 계약서를 쓰고 꼬박 한 달이 지났다. 집을 보러 가서 알게 된 그 작은 마당이 한 달 동안 마음밭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별거 아닌 작은 공간이 자려고 눈을 감으면 어른거렸고, 아이들과 대화 도중에 폴짝 뛰어나왔다.
3년 전 진급선물로 받은 '남천'화분을 실내에서 키우고 있었는데, 남천은 직사광선을 받지 않으면 붉은빛이 올라오지 않아서 파랗기만 한 약간은 밋밋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식물에게 해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건 참 묘한 일이다.
화분을 내어 놓을 생각에 더해 "그럼 뭐라도 키워봐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머리를 밈밈돌았다. 당연히 아이들에게도 "뭐 키우고 싶은 거 있어?" 라며 엉덩이를 간지럽혔다.
아이들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음-" 소리를 길게 뺀다. 어찌나 '음음'거리는지, 말도 잘 못하는 셋째와 넷째 아이도 형, 오빠를 따라서 "음-음--" 거리곤 하게 되었다. 내가 키우는 자식들이 둘러앉아 무얼 키울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그것도 참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단연코 선발주자로 등판한 것은 '강아지'였다. 동물, 식물, 곤충을 망라하고 뭐든 키우기 좋아하는 내가 생각해도 [마당]이라는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생명체는 [강아지]였다. 강아지만큼 아이들과 교감하며 지낼 수 있는 생명체도 없을 것 같았다.
"여보, 우리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울까?"
> 강아지가 안 되는 이유
아내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당에서만 키울 자신이 있겠냐고. 마당 흙밭을 밟고 다니던 강아지가 집으로 들어오면 집이 어떻게 되겠냐고. 그리고 아직 아이들이 책임감 있게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고 우리가 책임감 가지고 키우기에는 이미 책임감 가지고 키우고 있는 자식과 식물들이 많다고. 그러니 강아지는 불가능하다고. 탈락이다.
나와 아이들은 다시 교자상에 머리를 맞대고 작전회의에 들어간다. 아내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강아지'를 주장해서 혼나지 말고 차선책을 찾아본다. [마당]이라는 키워드에 그다음으로 적합한 건 [닭]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렸을 때 병아리를 데려다가 닭으로 길러본 경험도 있고, 공간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 아침마다 달걀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관심왕이 될 것이다.
"여보, 우리 닭은 어때?"
> 닭이 안 되는 이유
아내는 닭을 키우면 냄새가 얼마나 나겠냐고 한다. 키워본 나는 얼마 안 날 거라고 했지만 아내 생각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아내와 내가 후각적으로 자극을 받아들이는 역치값이 좀 다르긴 하다. 요즘 스타일로 말하면 '냄새 감수성'이 다른 건데, 아내는 아무리 마당이어도, 아파트에 딸린 마당에서 냄새나는 짐승은 안된다고 한다. 혹시 '꼬끼오-'하고 울기라도 하면 바로 민원도 들어올 거라고 한다. 계란은 사 먹자고 한다. 무엇보다 아내는 비행기 빼고 모든 날개 달린 것을 끔찍하게 혐오한다. 탈락이다.
나와 아이들은 다시 교자상에 머리를 맞댄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무엇이 좋을까 이야기해 주었다. "아빠는 어렸을 때 강아지, 닭, 구관조, 금붕어, 햄스터, 토끼, 거북이 키웠어. 아, 그래 토끼 어때? 소리도 못 내고 작고 귀엽잖아" 아이들은 '토끼'라는 말에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자주 가는 백숙집 마당에서 토끼에게 풀을 먹였던 기억이 불러내어진 것 같다. 토끼라면 아주 좋을 것 같다. 토끼의 해이기도 하고. 내가 토끼띠이기도 하고.
"나 닮은 토끼는 어때?"
> 토끼가 안 되는 이유
토끼는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한다. 백숙집에서 토끼 먹이줄 때 냄새 기억 안 나냐고 되묻는다. 또 토끼는 굴을 파고 들어가는데, 혹시 땅을 파서 옆집 마당으로 넘어가거나 뒷산으로 탈출하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우리 집은 산자락 바로 아래 있는 집이다.) 아이들이 매일같이 들에 가서 풀을 뜯어다 주는 것도 불가능할 거라고 한다. 토끼가 보기에나 이쁘지 가정에서 키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제 아이들과 나는 어떤 넘을 수 없는 딴딴한 장벽을 하나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자가로 산 주택도 아니고, 그저 전세로 얻은 아파트에 딸린 작은 마당이었다. 사실 말이 좋아 마당이지 어떻게 보면 그냥 지붕 없는 베란다나 테라스 정도의 느낌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일단은 포기하지 않고 "음-"을 뱉어본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염소 한 마리 키우고 싶은데, 아내와 나의 '사육 감수성'이 좀 다른 것 같다.
이젠 남아있는 짐승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심의 결과로 봤을 때, 크기는 강아지보다, 닭보다, 토끼보다 더 작아야 하고- 냄새도 나지 않아야 하며, 먹이를 구해 다 주기에도 용이해야 하고- 또, 아이들이 관리하기에도 쉬워야 한다. 짖거나 울어서도 안된다. 생각이 막막해지자 '다마고치'가 생각났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아-!"
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거북이를 키워보기로 한다. 전전전 집에 살 때 텃밭을 하며 작은 연못을 한 번 만들어 봤었는데 그때는 실패했다. 수위가 잘 유지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간혹 유튜브를 보며 연못 만드는 방법을 공부했었는데 그걸 써먹어 볼 때가 온 것 같다. 작은 연못에 거북이를 넣고, 개울가에서 민물고기나 새우도 몇 마리 잡아다가 키우고, 봄에는 개구리 알도 조금 떠와서 알에서부터 개구리가 되는 과정도 관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좋다'라고 한다. 예전부터 '거북이'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었는데, 집 안에서 어항을 관리하기가 참 쉽지 않아서 못 키웠더랬다. 아내에게 자신감 있게 심의 요청드렸다.
> 거북은 되는 이유
거북이는 크지도, 울지도, 냄새가 나지도 않고 아이들도 예전부터 키우고 싶어 했던 것이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다만 연못을 어떻게 할지, 아니면 작은 절구통이나 수조를 가져다 마당에 두고 키울지는 고민해 보자고 했다. 무슨 연못을 만드냐고 또. 거기에 개구리, 물고기 잡아다 넣어보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셨다.
동화 속에서도 이번 우리 집 애완동물 심의에서도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것 같다는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마당, 기껏해야 2.5m x 15m 정도 되는 고 작은 땅이 나와 아이들에게 얼마나 작고 소소하고 확실한 재미와 행복을 가져다주는지에 감탄했다. 그 앞에 펼쳐질 화분들과 거북이와 티테이블과 잔디밭이 입꼬리 리프팅을 유도했다. 이번에는 겨우 쪼만한 마당이지만 앞으로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넓은 마당에서 가족들을 보살피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마당에는 수영장도, 원반을 던지고 받으며 놀 멍멍이도, 담장을 워킹하고 있을 고양이도, 대추나무도, 꽃밭도, 벤치도, 조명도, 트램펄린도, 무엇보다 땀 삐질 흘리며 사방팔방 나풀거릴 아이들도 모두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벤치 아니고 벤츠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