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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pr 26. 2023

더블 에스프레소 바닐라 카라멜마키아또

#04 : 자유로 자유로


왕복 12차선이 넘는 도로는 가을야구의 응원석처럼 차들로 만석이었다. 화물차는 화물을, 버스는 승객들을, 승용차는 각자의 사정을 싣고 자유로에 달린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의 차만이 시계를 모시고 계획도, 목적도 없이 자유로를 달려 나갔다. 자유로였다. 자유로웠다. 봄내음이 아스팔트 위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도로 위의 차들은 가급적 자유로답지 않은 규정속도들을 준수하면서 달리고 있었지만 그의 차는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면서 1차선으로 올라타 규정속도를 훅- 넘어갔다. 120km/h이 되었다. 일탈을 해보지 않은 그의 30년 같이, 120킬로는 그의 자가용이 넘어가 보지 않은 속도였다. 그는 엑셀을 짓이겼다. 차는 150km/h이 되었다가 180km/h도 되었다. 직장상사 같은 차가운 시선의 카메라도 몇 개 지나간 것 같았다.  



차선은 조금씩 줄어 10차선이었다가 8차선이었다가 4차선까지 줄어있었다. 주변에 차들도 자유로 중간 어디쯤에선가 빠져나갔는지, 앞 뒤로 두어 대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심해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심해어처럼 몸에 힘을 빼고 으기적 느기적 헤엄쳐도 될 것 같았다. 속도는 그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30km/h로 내려앉아 있었다.  

 


77번 자유로와 1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까지 도달했고, 더 가면 북한까지 이를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자유로가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곳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새삼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는 큰길에서 내려와 논과 밭 사이로 이어지는 작은 길로 올라섰다. 진창과 움푹 파인 곳들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날이 더운지 땀이 맺혔다. 농부들이 쓰는 걸까파 싶은 원두막이 보여 차를 멈췄다. 분명 원두막에 드러누우면 금방 땀이 식을 것 같았다. 그러다 잠깐 "더울 때 차 안에서 잠들면 안 돼, 죽을 수도 있어"라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금처럼 숨통 조이는 삶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풀어놓은 시계에 두 바늘이 포개져 있었다. 12시였다. 시계가 표현하는 시작이자 끝의 시간이었다. 맺혔던 땀이 흘러 목깃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파주는 완연한 봄이었다. 스타벅스의 메뉴판보다 더 화려하고 생동감 넘쳤다. 삶을 시작하기에도 끝내기에도 좋은 날인 것 같았다. 차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수수하고 낭만적인 마감인 듯해서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다가 조수석에 시계를 보니 12시를 지나 두 바늘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엑셀에 조심스럽게 발을 얹었다. 차는 다시 흙길을 걸었다. 흙먼지가 낮게 그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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