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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pr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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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 결국, 결근


드라이브스루에서 커피를 아니 벚꽃을 픽업한 그는 창문을 내리고 손을 내밀었다. 바람이 생각보다 따듯했다. 그는 봄이 되었다는 것을 정말로 알아차렸다. 출근길 도중에 있는 아파트 단지 앞에 차를 세웠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뭐라고 연락을 할지 핑곗거리를 생각했다. 테이크아웃잔에는 식은땀 같은 이슬이 맺혀 흐르고 있었다. 분명 고리타분하지 않고 신박한 결근 거리가 있을 것 같았지만, 코로나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략 "출근 준비하는데 기침이 나고 두통이 심해서 열을 재보니 39도였다. 자가진단 키트에 희미한 두 줄이 나온 것 같다.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 보는 게 동료들에게 안전할 것 같다." 이런 식의 내용을 생각해 놓은 뒤 직장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 동안 체리 블라썸 화이트 초콜릿을 한 모금 빨아올렸다. 봄이었다.  



봄이라서 그런지, 직장상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도 회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었다. 우선 다른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냥 모두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만 남기기로 했다. 문자를 보내고 줄곧 주인노릇 하던 시계를 이제야 풀러 조수석에 던져놓았다. 이제는 시계의 운전기사가 되어 어디론가 데려가 볼 생각이었다.  



"결국, 결근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개근상을 놓치지 않았다. 직장생활 13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근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단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대단한 아침이었다. 체리블라썸 어쩌구가 위산을 내려보내는지 식도의 열감이 사라졌다. 하지만 다시 그의 관자놀이가 묵직해졌다. 30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일탈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처음 대면하는 문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풀어본 적 없는 문제였다. 늘 해야 하는 공부가 있었고, 치러야 하는 시험이 있었고, 작성해야 하는 보고서가 있었다. 할 것이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 풀었던 그 어떤 주관식 문제보다도 더 열린 과정과 결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최신 영화를 한 편 볼까, 다시 그 카페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할까 생각해 봤지만 오답일 것 같았다. "쯧, 쯧, 쯧," 시계가 혀를 차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치-ㅡ" 라디오를 켰다.  



"네, 57분 교통정보입니다. 오늘은 미세먼지 걱정 없는 쾌청한 봄날을 만나보실 수 있겠습니다. 평일이 아니라면 어디든지 행락객들이 가득하겠지만 도로상황은 대체로 여유롭습니다... "



달려보고 싶었다. 매일 출근하는 시계와 신호가 통제하는 그 길 말고 끝까지 쭈욱 달려볼 수 있는 어떤 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조금씩 좁아지다가 결국엔 단차로만 남다가 비포장이 되었다가 사라져 버리는 어떤 길의 끝까지 달려보고 싶었다. 파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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