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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pr 26. 2023

더블 에스프레소 바닐라 카라멜마키아또

#02 : 부-ㅡ


'부-ㅡ'


"다는 못 하겠다. 더는 못 하겠다."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누웠으나 자정께 먹은 커피 때문인지 결승전 경기장에 입장한 선수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도 감정의 저수지 밑바닥에서 막 낚은 활어 같은 심장을 진정시킬 순 없었다. 그리고는 시작되었다. '부-ㅡ'  



이명은 감기 같은 것이었다. 때때로 그를 찾아와 수면을 방해했다. '부-ㅡ' 하는 소리는 듣지 않으려고 할수록 신이 나서 더 크게 귓가에 울렸다. 처음에는 어디서 전기가 누전되는 소리인가 싶어서 집안 곳곳을 둘러보고 아내를 깨워 묻기도 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하지만 그 소리는 오직 그의 귓바퀴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콧물과 기침과 두통이 함께 다니는 것처럼, 그에게는 이명과 역류성식도염과 탈모가 함께 찾아왔다. '부-ㅡ' 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식도는 마그마가 흐르는 듯 뜨겁게 지져졌다. 일단 집중하게 된 '부-ㅡ'소리와 식도의 뜨거움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그의 수면을 공놀이하듯 주고받다가 심술쟁이처럼 저- 멀리 걷어차 버렸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고 아침에 머리를 감으면 어디서 나왔는지 셀 수 없이 많은 머리카락이 바다를 떠난 연어 떼처럼 두피를 떠나 하수구로 향했다. 어제도, 그제도 이렇게 빠졌는데 민머리가 되기까지 며칠이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에 몇 초, 멍하게 거울을 보는 시간이 생겼다. 그는 사실 거울을 잘 안 보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아름다운 얼굴도 아닐뿐더러 요즘엔 우울한 표정과 푸석한 표정까지,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사람의 몰골이었기 때문이었다.  



'부-ㅡ'

 


아침이 밝았다.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르겠지만 피곤한 건 확실했고, '더블 에스프레소 바닐라 카라멜마키아또 그란데, 아니 벤티 사이즈'를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근하는 길에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신호등보다는 시계가 그를 직장으로 안내했다. 그가 멈춰 설지 움직일지는 시계가 정해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공사 감독관 같은 시계가 혀를 쯧쯧 차며 늦었다 재촉하면 신호도 어겨야 했다.   



출근길에 며칠 전 갔었던 카페가 보였다. 시간은 빠르게, 그는 느리게 움직였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바쁜 아침시간부터 드라이브스루 진입로에는 "제발 커피를 팔아주세요"하는 차들이 줄을 늘어서 있었다. 거만한 스타벅스의 친절한 직원들이 커피를 팔아주시고 있었다. 그는 상식적으로 돈도, 시간도 아까운데 그 커피가 줄 까지 서가며 마실 정도의 맛인가- 생각했다. 그리고는 생각과는 다르게, 또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그 자동차들의 대열 뒤에 꼬리를 물었다.  



시계는 당황한 듯 '쯧쯧'거림을 멈추고 하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고 메뉴판으로 눈을 가져갔다. "아." 봄이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던 그의 입에서 신음 같은 놀라움이 터져 나왔다. 그에게 있어 이번 봄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곳은 메뉴판이었다. 딸기네 벚꽃이네 하는 메뉴들이 컵 매무새를 자랑하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에 그의 차례가 되어 입을 열었다. 스피커 넘어에서의 직원은 대면했을 때보다는 덜 재촉하는 느낌이었다. "아 네, 여기 메뉴판에 있는 벚꽃ㅡ 아, 체리블라썸 화이트 초콜릿 한 잔 주세요. 그란데 사이즈로요. 아니 벤티요." 다행히 친절하지만 궁금한 게 많은  직원이 "드시고 가세요?"라고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는 여러모로 드라이브 스루가 더 편하다고 생각했다.



시계는 단단히 굳은 표정이 굳어있었다. 그는 직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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